인문학 에세이 — 일상을 사유로 바꾸는 인문학적 성찰의 의미

인문학 에세이 가이드 — 일상을 사유로 바꾸는 3가지 시선

인문학 에세이 가이드 — 일상을 사유로 바꾸는 3가지 시선

인문학 에세이는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어느 날 밤, 내가 살고 있는 전주의 우리 학교 앞의 원룸에서 혼자 배달 앱을 켰다. 전주의 올리브영 배송팀에서 배달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다. 땀이 채 식지 않은 상태로 노트북 앞에 앉아 존 스타인벡을 다시 펼쳤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장면, 스타인벡이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배달 알바하는 교수,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 그리고 30년째 문학을 가르치는 학자. 이 세 정체성이 하나의 몸 안에 공존하는 것이 전주 원룸 책상 위의 출발점이다.

인문학 에세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주유소 앞에서 멈춘 발걸음, 캐나다 마트에서 들은 “Sorry”라는 한 마디, 여산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느끼는 묘한 감각 — 이 모든 것이 사유의 재료가 된다. 이 블로그가 그 재료들로 빚은 사유의 공간이다. 일상을 사유로 바꾸는 3가지 시선으로 이 카테고리 전체를 안내한다.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이야기 속에서 산다.” 필자도 그렇게 믿는다. 배달 가방을 메고 전주 골목을 달리면서도, 살리나스의 농경지를 바라보면서도, 캐나다 마트에서 “Sorry”를 들으면서도 —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인문학 에세이는 그 이야기를 붙잡는 행위다.

기러기 아빠의 삶은 생각보다 철학적이다. 혼자 밥을 차려 먹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잠드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필자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소음이 없으면 목소리가 들린다. 바쁨이 없으면 질문이 생긴다. 전주의 조용한 밤, 올리브영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오늘 만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살까.” 배달 가방 속 물건들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인문학 에세이는 그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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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에세이의 첫 번째 시선 — 언어가 품은 감정의 온도

인문학 에세이 — 언어가 품은 감정의 온도, 말 한마디의 인문학

인문학 에세이의 첫 번째 시선은 언어입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지.

“I’m fine.” — 이 두 단어가 숨기는 것들이 있다. 영어권 문화에서 이 표현은 종종 “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는 신호다. 캐나다 런던의 여름 오후, 땀을 뻘뻘 흘리며 앞마당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How are you?”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 “I’m fine”이었다. 그 말이 품은 온도가 너무 차가워서 필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인문학 에세이는 그 순간에서 시작된다.

“I’m fine.”이 숨기는 것을 처음 깨달은 건 캐나다 런던의 여름이었다. 섭씨 35도의 불볕더위 속에서 이웃집 노부인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I’m fine, thank you”를 반복했다…

“Sorry”와 “I’m sorry”는 같은 말인가?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의 동네 마트 소비스(Sobeys)에서 카트가 살짝 부딪혔을 때 상대방이 건넨 “Sorry”는 사과인가, 인사인가? 30년 영어 교육 경험이 있어도 그 순간의 온도를 정확히 번역하기는 쉽지 않다. 언어의 인문학은 바로 그 번역 불가능한 지점에 있다.

살리나스를 처음 밟던 2003년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공항 렌터카 카운터에서 지도를 받아들고 살리나스 밸리로 향하던 그 길,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상추밭과 브로콜리 밭을 보며 필자는 생각했다. “스타인벡은 이 길을 걸으며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썼구나.” 문학과 장소가 만나는 순간, 텍스트는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장소는 기억을 저장하는 그릇이고, 그 그릇을 열면 질문이 쏟아진다. 인문학 에세이가 장소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It’s okay”는 왜 때로 공허하게 들리는가. “I know how you feel”은 왜 때로 상처가 되는가. “No problem”은 왜 때로 차갑게 느껴지는가. 이 질문들이 인문학 에세이 시리즈 첫 번째 묶음의 핵심이다. 말의 온도를 읽는 것, 그것이 진짜 언어 감수성이다.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다. 30년간 영어를 가르치면서 필자가 깨달은 것은 영어 실력보다 언어 감수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의 온도를 읽고, 침묵의 무게를 느끼고, 단어 하나가 품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 — 이것이 진짜 언어 능력이다. 인문학 에세이가 언어를 다루는 방식은 그래서 문법 설명이 아니라 감정의 해석이다. “Sorry”한 마디에 담긴 캐나다의 문화를, “I’m fine”한 마디에 숨겨진 영어권의 정서를 함께 읽어가는 것, 그것이 이 카테고리의 언어 이야기다.

[내부 링크]
[감정의 언어학 — “I’m fine”이 숨기는 5가지 진실]
[사과의 언어학 — “Sorry”와 “I’m sorry”가 다른 5가지 이유]
[위로의 언어학 — “It’s okay”가 공허하게 들리는 5가지 이유]
[공감의 언어학 — “I know how you feel”이 상처가 되는 5가지 이유]
[말의 온도 — “No problem”이 때로 차갑게 느껴지는 5가지 이유]


인문학 에세이의 두 번째 시선 — 장소가 불러오는 기억과 질문

인문학 에세이 — 장소가 불러오는 기억과 질문, 여산 휴게소와 살리나스

인문학 에세이의 두 번째 시선은 장소다. 우리가 지나치는 모든 공간은 질문을 품고 있다. 장소는 사람을 만든다. 전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전주에서 살면서 필자는 전주의 속도를 몸에 익혔다. 서울의 빠름도, 캐나다 런던의 여유로움도 아닌, 전주만의 리듬이 있다. 한옥마을 골목을 걷다가, 덕진공원 연못 앞에 서다가, 전북대 캠퍼스를 가로지르다가 — 그 일상의 공간들이 인문학 에세이의 배경이 된다.

여산 휴게소.
한 달에 한 번, 어머니를 뵈러 서울을 오가는 길에 반드시 지나는 그곳. 그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필자는 이상하게 집이 생각난다. 집이 전주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이 런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산 휴게소 앞에 서면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불쑥 올라온다. 인문학 에세이는 그 질문을 붙잡는 데서 시작된다.

2003년, 캘리포니아 살리나스.
스타인벡의 고향을 처음 밟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몰고 살리나스 밸리로 들어서던 순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농경지를 보며 필자는 생각했다. “이 땅에서 조드 가족이 걸었구나.” 2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은 인문학 에세이의 원형으로 남아있다.

주유소 앞, 가격판.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진 날. 30년 넘게 경유 자동차를 운전을 해온 사람에게 그 역전은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당연하지 않아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의 의미를 묻기 시작한다.” 이것이 인문학 에세이가 일상의 균열을 포착하는 방식이다.

살리나스에서 돌아온 후, 필자는 스타인벡의 문장을 다르게 읽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서 읽는 텍스트와, 작가가 숨 쉬었던 땅을 직접 밟고 난 뒤 읽는 텍스트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장소는 문학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여산 휴게소가 필자에게 집의 질문을 던지듯, 살리나스 밸리는 스타인벡의 문장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몸으로 알게 해주었다. 인문학 에세이가 장소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유의 촉매다.

[내부 링크]
→ [집이란 무엇인가? — 여산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몸이 먼저 대답하는 3가지 감각]
→ [스타인벡 살리나스 — 23년 전, 작가의 땅을 처음 밟던 날]
→ [경유 휘발유 가격 역전 — 당연함이 무너진 날의 기록]
→ [커피 한 잔이 되찾아준 것들 — 불수의적 기억과 집의 의미 3가지]
→ [우리는 왜 4,700km를 달려가 라면을 끓였을까, 여행이 남긴 5가지 진실]
[4일에 한 번씩 현관문이 닫힌다 — 승무원 딸을 둔 기러기 아빠의 기록]


인문학 에세이의 세 번째 시선 — 삶의 전환점에서 묻는 것들

인문학 에세이 — 삶의 전환점에서 묻는 것들, 62세 교수의 인생 2막

인문학 에세이의 세 번째 시선은 전환점이다. 나이 듦, 권위, 정체성 — 삶이 꺾이는 지점에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만난다.

62세.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유튜브 채널을 켠다. 학생들은 “교수님, 그 나이에 유튜브를요?”라고 묻는다. 그 질문 앞에서 필자는 잠시 생각한다. 나이는 무엇인가. 디지털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인가. 인생 2막이라는 말은 패배의 언어인가, 도전의 언어인가. 인문학 에세이는 그 질문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권위란 무엇인가.
교황이 서거하고 트럼프가 조문을 거부했다는 뉴스를 보며 필자는 1077년 카노사의 굴욕을 떠올렸다. 권위는 힘에서 오는가, 도덕에서 오는가, 아니면 우리가 부여하는 믿음에서 오는가. 스마트폰 화면을 무심코 넘기다 멈춘 그 질문이 전주 서재에서 글 한 편이 되었다.

한국인의 영어 인식.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그 오래된 이야기. 30년 강단에서 거듭 목격한 장면이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과, 영어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다는 꿈 사이의 거리. 그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이 진짜 배움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62세에 블로그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대단하시네요”와 “왜요?” 필자는 후자가 더 솔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 나이에,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30년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전달했던 것들, 논문으로 쓴 것들, 혼자 생각하다 잠든 것들 — 그것들이 블로그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를 찾고 있다. 인문학 에세이는 그 형태 중 하나다.

[내부 링크]
→ [62세 교수가 유튜브 7개를 운영하는 진짜 이유 — 팀쉘(Timshel)의 실천]
→ [권위란 무엇인가? — 교황과 트럼프, 카노사의 눈밭에서 찾은 진짜 품격의 조건 3가지]
→ [한국인 영어 인식,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우리의 이야기]
→ [나이 들수록 사람을 피하게 되는 3가지 이유 — 그게 aging일까, maturing일까]
→ [우리는 모두 작은 구멍으로 세상을 본다 — 색안경의 철학과 3가지 인간 이해]
→ [체면 때문에 지갑을 열었던 날 — 우리가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는 3가지 이유]
→ [나 때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 세대 차이로 읽는 3가지 젊음의 용기]
→ [노견의 시간이 가르쳐준 3가지 — 15년을 함께 늙어온 모카]


인문학 에세이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인문학 에세이 — 일상을 사유로 바꾸는 인문학적 성찰의 의미

전주의 밤은 조용하다. 배달 알바를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노트북을 열면, 캐나다 런던은 아침이다. 모카가 산책을 다녀온 후에 와이프가 아침식사를 주고 와이프도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이고, 우리딸도 출근 준비로 분주할 것 같은 시간이다. 이 시차 속에서 필자는 글을 쓴다. 기러기 아빠의 밤과 가족의 아침 사이, 그 틈새에서 인문학 에세이가 태어난다. 외로움이 사유가 되고, 사유가 글이 되고, 글이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profhwang.com을 시작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30년간 강단에서 말로 전달했던 것들을 이제는 글로 남기고 싶었다. 유튜브 채널 “황박사 잉글리쉬 TV”와 “딜리버리 집시”를 운영하면서, 블로그에 인문학 에세이를 쓰면서, 필자는 깨달았다. 가르치는 것과 나누는 것은 다르다. 강단에서의 언어는 권위를 향해 흐르지만, 에세이의 언어는 독자를 향해 흐른다. 이 블로그의 Life & Humanities 카테고리는 그 흐름의 공간이다. 배달하는 교수, 기러기 아빠, 스타인벡 학자 — 이 세 정체성이 만나는 곳에서 오늘도 인문학 에세이는 계속된다.

인문학 에세이는 해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을 남긴다. “I’m fine”이 품은 온도를 읽는 것, 여산 휴게소 앞에서 집을 떠올리는 것, 62세에 유튜브 채널을 여는 것 — 이 모든 것이 인문학 에세이의 재료다.

전주의 작은 원룸, 캐나다 런던의 추운 겨울, 살리나스의 광활한 농경지 — 필자가 살아온 공간들이 이 에세이들의 배경이다. 기러기 아빠로 혼자 지내는 시간, 배달 알바를 하며 만나는 사람들, 대학 강단에서 30년간 쌓아온 질문들 — 이것들이 인문학 에세이의 뿌리다.

스타인벡은 말했다. “이야기를 쓰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이 블로그 profhwang.com의 Life & Humanities 카테고리는 그 시도의 공간이다. 일상을 사유로 바꾸는 인문학 에세이 — 오늘도 계속된다.

생각해보면 인문학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일종의 대화다. 혼자 쓰지만 혼자만을 위한 글이 아니다. 전주에서 혼자 밥을 먹는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가, 캐나다 마트에서 “Sorry”를 듣고 멈춘 순간이, 살리나스의 광활한 농경지 앞에서 느낀 전율이 — 누군가의 비슷한 경험과 만나는 순간 글은 비로소 완성된다. 독자가 읽는 순간 에세이는 살아난다. 그래서 오늘도 전주의 밤, 노트북 앞에 앉는다.

Read Deep, Speak Well.

[외부 링크]
한국연구재단 학술지 — 인문학 관련 논문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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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1. This essay explains that humanities essays come from reflecting on everyday life experiences through language, places, and life changes.
    2. I’m fine > 나는 괜찮아
    3. 괜찮다는 뜻이지만 괜찮지 않을때 사용한다는걸 알고 영어도 한국어와 같이 말의 이중성이 신기하다고 느꼈고 대화를 할때 괜찮다고 하기전에 정말 괜찮은지 되돌아볼수있게 된것같다.

    26510040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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