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 배달하는 교수 에어캐나다 공항에서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를 성찰하는 중년의 밤

나이 들수록 사람을 피하게 되는 3가지 이유 — 그게 aging일까, maturing일까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는 처음엔 잘 몰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서서히,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이 글에서 올리브영 화장품을 배달 알바하는 교수 황치복이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를 일상에서 건진 인문학적 통찰 3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를 성찰하는 배달하는 교수의 전주 저녁 골목

보통 중간고사 시즌때에 활동하고 있는 여러 영어영문학회에서 공지가 뜨면 예전엔 달력부터 확인했습니다. 어느 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참여할 수 있는지, 어느 심포지엄에 지명 토론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지. 그런데 요즘은 아주 다릅니다. 공지 메일을 잠깐 보다가 슬그머니 창을 닫습니다. 핑계는 늘 있습니다. 수업이 있다, 원고 마감이 있다, 몸이 좋지 않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어느 순간부터 피곤해졌습니다.

더 솔직한 장면은 배달 중에 나옵니다. 올리브영 화장품 배달 알바를 하며 전주의 할당된 길을 가다가 아는 얼굴이 보일 것 같으면 저도 모르게 속도를 높입니다. 차 안에서 고개를 살짝 돌리고, 야구 모자를 더 깊이 눌러씁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주의 어느 아파트에 배송을 갔는데 지하 주차장에서 졸업한 제자와 진짜 우연히 딱 마주쳤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더군요. 그 학생은 16학번 여학생, 같은 과 남학생과 결혼한 유부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자를 더 깊이 눌러썼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어?? 교수님! 여긴… 왜요?”
“아… 아는 분이 있어서…”
잠깐의 침묵. 그러다 그 학생이 먼저 웃으며 물었습니다.
“교수님! 저 누구랑 결혼했는지 아세요?”
“어, 알지.”
“아가는 있어?”
“아직이요.”
“그래… 반갑다. 나중에 보자~!”

지하 주차장 불빛 아래, 물건을 든 교수와 유부녀가 된 제자. 황급히 말을 얼버무리며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저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났습니다.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가 두려움인가, 부끄러움인가, 처음엔 그것부터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깨달았습니다. 둘 다 아니라는 것을. 그냥 삶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운동한다는 마음으로 배달 알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낯선 동네, 낯선 아파트 단지, 처음 보는 사람들. 그 낯섦이 오히려 해방감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황 교수로 보지 않는 시간.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는 얼굴들이 배달 반경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설명해야 할 것들, 오해를 풀어야 할 것들이 피곤해진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 — 윌리 로먼은 끝까지 피하지 못했다

세일즈맨의 죽음 윌리 로먼 aging maturing 인문학적 성찰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

아서 밀러(Arthur Miller, 1915~2005)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입니다.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으로 1949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과 인간의 존엄성을 날카롭게 파헤친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윌리 로먼이 그저 비극적인 인물로 보였습니다. 평생 “나는 잘 알려져 있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남자. 그런데 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그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밀러는 윌리의 비극을 단순히 경제적 실패로 그리지 않습니다. 윌리는 평생 “attention must be paid”를 외쳤습니다. 나를 봐달라, 나를 기억해달라, 나를 사랑해달라. 그 외침이 클수록 그는 더 깊이 고립되었습니다. 끝까지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고, 인정받으려 했고, 기억되려 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혼자 죽었습니다.

윌리가 비극적인 이유는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끝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aging 했지만 maturing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시간이 그를 익히지 못했습니다. 포도가 시들면 쭈글쭈글해지고, 익으면 와인이 됩니다. 윌리는 와인이 되지 못한 채 시들어버린 포도였습니다.

저는 요즘 그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기보다, 조용히 빠져나오는 쪽을 택합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 배달할 물건들을 차에 싣고 전주 골목길을 달리는 그 시간이 사실은 가장 자유롭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의 첫 번째 층위입니다.

두 번째 이유 — 피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하는 것이다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의 두 번째 층위는 강의실에서 발견했습니다. 수 십년 동안 강단에 서면서 이런 학생들을 많이 봤습니다. 발표 시간에 무조건 손(?)을 드는 학생. 틀려도 좋으니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학생. 그 에너지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젊음의 방식입니다. 나도 한때 그랬습니다. 학회에서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려 했고, 논문 발표 후 토론 시간에 가장 오래 마이크를 잡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그 에너지의 방향이 바뀝니다. 밖으로 뻗던 촉수가 안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학회장에서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던 손이 어느 순간 주머니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게 수줍음이 아니라 선택이 된 순간, 무언가 달라진 것입니다. 나는 요즘 내가 피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소음이라는 것을 압니다.

학회 자리의 형식적인 타 대학 교수들과의 악수, 명함 교환, 누가 어느 저널에 실었느냐는 화제들. 그 자리에 있어도 정작 아무 말도 남지 않는 대화들. 배달 중 마주칠 뻔한 아는 얼굴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명해야 할 것들이 피곤해졌습니다. 교수가 왜 배달을 하느냐는 시선, 기러기 아빠로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동정 어린 눈빛. 그 모든 것을 감당하는 에너지가 아깝습니다.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의 두 번째는 이것입니다. 더 이상 모든 관계를 붙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버린 것. 그것을 냉담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요즘 그것을 편집이라고 부릅니다. 좋은 글이 편집을 통해 완성되듯, 좋은 삶도 편집이 필요합니다. 불필요한 소음을 덜어낼수록 진짜 목소리가 들립니다.

세 번째 이유 —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렵지 않아졌다

방학이 되면 캐나다 런던으로 갑니다. 아내와 딸, 그리고 애완견 푸들, 우리 모카를 만납니다. 공항을 나서는 순간, 저도 모르게 어깨가 내려앉습니다. 설명할 필요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차이가 전부를 말해줍니다.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는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설명이 피곤해서입니다.

캐나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늘 이상한 감정이 듭니다.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 그런데 그 혼자가 이제는 공허하지만은 않습니다. 전주의 조그마한 원룸아닌 쓰리룸(!)의 문을 열면 아무도 없는 거실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 고요함이 적이 아니라 동반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어느 순간부터입니다.

차 안에서 생각이 선명해집니다. 오늘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 오래된 존 스타인벡 문장 하나, 캐나다에 있는 가족 생각. 사람이 줄어든 자리에 생각이 채워집니다. 그것이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의 세 번째 층위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렵지 않아진 것. 아니, 오히려 그 시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 나이 듦의 가장 조용한 선물입니다.

윌리 로먼은 끝까지 그 차이를 몰랐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다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고, 그 공허함을 메우려 더 많은 사람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 고립되었습니다. 나는 반대로 가고 싶습니다. 많은 자리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대신, 진짜 중요한 자리에서는 온전히 있고 싶습니다.

기러기 아빠 배달하는 교수 에어캐나다 공항에서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를 성찰하는 중년의 밤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를 나는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aging인지 maturing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습니다. 내가 편집하고 있는 것이 정말 소음인지, 아니면 용기가 필요한 관계인지. 그 구분은, 아직도 배달 중입니다.

모자를 눌러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런데 최근 반전이 생겼습니다. 올리브영 배송 일을 하면서 함께 일하는 동료를 한 명 만났습니다. 처음엔 그냥 같은 시간대에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친해지려 한 것도 아니었고, 먼저 말을 걸려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각자의 배송 구역을 돌고, 각자의 차로 돌아가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달랐습니다. 누군가 업무에 미비하면 말없이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쉬는 날엔 제 구역까지 뛰어다녔고, 배송 출발 전에는 항상 어김없이 맛있는 간식을 꺼내 돌렸습니다. 온갖 희생정신이라는 말이 딱 맞는 사람. 거창한 말을 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 옆에서는 이상하게 모자를 눌러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됐고, 오해를 풀지 않아도 됐습니다. 교수인지 배달부인지 묻지 않았고, 저도 굳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를 한참 생각해온 내가, 배달할 물건들을 가지러 센터에 가면 어느새 그 사람이 나왔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그 사람은 먼저 나와 저의 배송물건 모두를 정리해주었습니다. 학회장에서 명함을 돌리던 시절엔 수백 명을 알았지만 지금은 정작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딱 한 사람인데,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윌리 로먼은 수천 명에게 인정받으려다 아무도 얻지 못했습니다. 나는 반대였습니다.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를 찾아 한참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진짜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agingmaturing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더 좋은 한 사람을 알아보기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익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 하나를 알아볼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익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부 링크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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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글: 인간은 왜 자연 앞에서 무너지는가 — 『미지의 신에게』 3가지 철학으로 읽기

외부 링크 제안

Merriam-Webster: aging vs. maturing 정의

Arthur Miller 공식 사이트 — Death of a Sale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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