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기 출격 - 1942년 새벽 B-17 폭격기 앞에 함께 선 미 육군 항공대 승무원들의 다큐멘터리풍 이미지

『폭격기 출격』, 스타인벡이 펜과 칼로 그려낸 이중주

『폭격기 출격』(Bombs Away)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쓰인 선전 문학입니다. 하지만 스타인벡 문학에서는 평범한 개인들이 유기적 공동체를 이루어 재앙에 맞서는 독특한 집단 인간 이론의 실천으로, 국가의 요청과 작가의 신념이 팽팽하게 맞서는 펜과 칼의 이중주로 깊이 있게 다루어집니다. 이 글에서 예술적 품위와 국가적 의무 사이에서 고민했던 거장의 고뇌가 담긴 『폭격기 출격』의 입체적 문학적 통찰을 정리했습니다.

필자는 지난 2003년 학술 연구년 기간에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에 위치한 국립 스타인벡 센터를 방문하여 그의 미공개 서한들과 당시 정부 문서들을 직접 조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또한 산호세 주립대학교의 마사 히즐리 콕스 스타인벡 연구센터에서 방문교수로 지내며 먼지 쌓인 아카이브 속에서 이 얇은 논픽션의 초판본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묘한 전율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서고 한구석에 조용히 꽂혀 있던 그 책은 『분노의 포도』나 『에덴의 동쪽』에 비해 좀처럼 인용되는 일이 드물었지만, 그 얇은 부피 안에서 필자는 스타인벡이 소설에서 반복해 온 어떤 사유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진보적 리얼리스트 존 스타인벡이 국가의 요청에 따라 공군 입대를 독려하는 책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문학도들에게는 다소 이질적인 충격으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먼지 묻은 1942년의 텍스트를 한 장씩 넘기며 필자가 깨달은 것은 그가 선전 기획물 안에서도 끝내 자신만의 인간주의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폭격기 출격』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한창이던 1942년 11월, 바이킹 출판사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형식의 논픽션입니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의 젊은이들을 폭격기 승무원으로 자원입대시키기 위해 미 육군 항공대의 의뢰를 받아 탄생했습니다. 스타인벡은 사진작가 존 스웝과 함께 30일 동안 2만 마일을 이동하며 미 대륙 곳곳의 비행 훈련소를 직접 누볐고, 스웝이 찍은 60장의 사진이 조종사, 부조종사, 항법사, 폭격수, 무전병, 기관총 사수로 구성된 폭격기 팀의 각 임무를 기록했습니다.

취재 방식 자체가 이미 예사롭지 않습니다. 소설가라면 상상력으로 채웠을 법한 자리를, 스타인벡은 직접 발로 뛰며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단순히 군사 강국의 위용을 자랑하거나 전쟁을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계 문명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연대하고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체로 진화하는지에 집중했습니다. 이 글의 비평적 논지는 폭격기 출격이 단순한 전쟁 프로파간다를 넘어, 국가의 붓과 작가의 펜이 부딪히고 화해하는 이중주 속에서 스타인벡 문학의 핵심 사상인 집단 인간 이론이 변주된 독창적 논픽션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1942년 새벽 B-17 폭격기 앞에 함께 선 미 육군 항공대 승무원들의 다큐멘터리풍 이미지

국가 권력의 요청과 작가적 자율성의 보이지 않는 갈등

노동자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을 그리며 자본주의의 병폐를 날카롭게 고발했던 거장이 돌연 국가의 공식 대변인이 되어 펜을 들었을 때, 미국 문단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겉보기에는 전쟁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전형적인 선동 도구처럼 보이지만, 세밀한 정밀독해를 거치면 텍스트 저변에 흐르는 저자의 미묘한 긴장감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작가는 군대라는 거대한 관료제 집단이 개인의 고유성을 말살하는 기계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는 군인들을 영혼 없는 전투 장비의 일부가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과 고향을 가진 살아 숨 쉬는 인격체로 묘사하려 애썼습니다. 군부의 철저한 검열 속에서도 스타인벡은 전쟁의 파괴성보다는 대원들이 훈련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성장과 상호 신뢰 형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자율성을 지켜내고자 분투했습니다. 검열관의 붉은 펜과 스타인벡 자신의 검은 펜이 같은 원고 위에서 부딪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결코 순탄하게 쓰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긴장감 덕분에 『폭격기 출격』은 단순한 선전 책자를 넘어 시대의 비극을 기록한 문학적 목격담으로 격상될 수 있었습니다.

스타인벡의 취재 방식 자체도 소설가의 것이 아니라 인류학자의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승무원 개개인의 성격과 습관, 훈련 과정의 세부를 꼼꼼히 관찰했고, 그 관찰의 축적 위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인물을 먼저 만들고 사건을 배치하는 소설가의 방법론이 아니라, 실재하는 인물을 먼저 관찰하고 그 관찰 위에 서사를 얹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폭격기 출격』은 훗날 그가 보여줄 논픽션 작가로서의 감각—기록자이자 동시에 해석자로서의 태도—이 처음으로 시험된 무대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폭격기 출격 - 폭격기 내부에서 각자의 임무에 몰두한 여섯 승무원의 협동 장면

여섯 개의 개성이 모여 완성되는 하나의 유기체, 팔랑크스 사상의 재림

스타인벡 문학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 중 하나는 바로 집단 인간, 즉 팔랑크스(phalanx) 이론입니다. 이는 개별 인간들이 모여 하나의 더 큰 유기적 생명체를 구성한다는 사유로, 그가 생물학자 에드 리케츠와 나눈 대화와 『코르테스의 바다』에서의 관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폭격기 출격에서 이 팔랑크스 사상은 군사적 맥락으로 옮겨 갑니다. 조종사, 부조종사, 항법사, 폭격수, 무전병, 기관총 사수로 이루어진 이 소우주는 각자의 완벽한 의무 이행을 통해서만 하늘이라는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습니다. 여섯 명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제 역할을 놓치면, 나머지 다섯 명의 완벽함은 아무 소용이 없어집니다. 이 구조는 스타인벡이 노동 운동이나 이주민 공동체를 관찰할 때 발견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 즉 개인의 총합이 아니라 개인들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층위의 존재였습니다.

소설 속 한 대목은 이러한 유기체적 결합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This was a crew, a cohesive group which acted as a single organism rather than six individuals operating a machine.
이것은 하나의 승무원단이었으니, 기계를 작동시키는 여섯 명의 개인이 아니라 단일한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응집력 있는 집단이었다.

또한 이런 문장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The bomber itself is useless without the men who make it live.
폭격기는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기계는 인간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이 신념은 오늘날 인공지능과 무인 무기 체계가 발전한 시대에도 여전히 울림을 줍니다. 조종사 혼자서는 폭격기를 완성할 수 없고, 항법사 혼자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각자가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그 기능들이 결합하는 순간 개인은 사라지고 하나의 팀이라는 새로운 생명체가 등장합니다. 스타인벡이 이 결합의 순간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승무원 각자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결국 그 묘사들이 향하는 지점은 여섯 개의 개별성이 아니라 하나의 팀이라는 집합적 인격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일찍이 『분노의 포도』에서 오클라호마를 떠나 서부로 향하던 이주민들이 길 위에서 하나의 거대한 가족적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던 모습과 정확히 궤를 같이합니다. 다만 두 집단의 얼굴은 다릅니다. 분노의 포도의 집단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밀려나는 수동적 존재로서 슬픔과 분노 속에 뭉쳤다면, 폭격기 출격의 폭격기 팀은 국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조직되어 자긍심과 사명감으로 결합합니다. 같은 팔랑크스 사상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이토록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스타인벡이 집단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치적 맥락과 무관하게 순수한 형이상학적 관심으로 다루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에게 집단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의 문제였던 셈입니다. 그는 전쟁터의 폭격기 팀을,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협동을 강요받는 또 다른 형태의 이주민 공동체로 바라보았습니다.

평범한 얼굴들, 제목과 내용 사이의 거리

흥미로운 사실은 『폭격기 출격』이라는 제목과 실제 내용 사이의 거리가 상당하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제목만 보고 폭격 장면이 반복되는 전쟁 기록을 예상합니다. 그러나 실제 작품에서 스타인벡이 오래 머무는 장면은 폭격이 아니라 훈련, 기다림, 식사, 실수, 긴장, 동료와의 대화입니다. 이러한 일상의 순간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출격의 순간은 오히려 짧게 스쳐 지나가고, 그 이전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준비 과정이 훨씬 더 두텁게 서술됩니다.

여기에서 스타인벡 특유의 시선이 드러납니다. 그는 사건보다 사람을 먼저 봅니다.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보다, 그 폭탄을 들고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의 표정을 더 오래 바라보는 작가. 그것이 바로 스타인벡입니다. 이 특징은 『생쥐와 인간』에서도, 『에덴의 동쪽』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사건은 지나가지만 사람의 표정과 습관, 말투는 텍스트 안에 오래 남습니다.

독일이나 일본의 군사 프로파간다가 초인적인 영웅이나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스타인벡이 그려낸 『폭격기 출격』의 주인공들은 지극히 평범한 이웃집 청년들입니다. 농부의 아들, 시골 마을의 점원, 대학을 다니다 만 평범한 젊은이들이 폭격기 팀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추적할 뿐, 작가는 이들을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전쟁 영웅으로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거창한 이념이나 지정학적 야욕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소박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책임감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힘이라는 그의 오랜 믿음이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미국 군부의 의도대로 군대의 물리적 파괴력을 자랑하기보다, 그 군대를 구성하는 소시민들의 도덕성과 성실함을 전면에 내세운 것입니다. 이는 국가적 영웅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평범한 인간들의 존엄성을 채워 넣으려는 인본주의적 시도였습니다.

낡은 원고 폭격기 출격이 놓인 책상 위 타자기와 군용 지도 정물

선전문학이라는 낙인 너머, 펜이 걸어간 다음 길

『폭격기 출격』은 오랫동안 스타인벡의 소품, 혹은 노골적인 친군부 선전물이라는 평가에 갇혀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분노의 포도』 같은 걸작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고, 스타인벡 자신도 이 작업을 문학적 성취보다는 시국에 대한 응답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선전문학이라는 딱지 아래에는 스타인벡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집단 인간에 대한 일관된 탐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단순히 시대의 산물로만 읽는다면, 우리는 스타인벡이 평생 걸고 넘어졌던 질문 하나를 놓치게 됩니다. 개인은 언제, 어떻게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되는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며 군 내부의 사정과 전쟁의 작동 방식을 면밀히 관찰한 스타인벡은 이듬해인 1943년,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종군기자로 임명되어 직접 유럽 전선으로 향하게 됩니다. 『폭격기 출격』을 쓰며 품었던 전쟁에 대한 일말의 낭만적 기대나 기술적 낙관론은 실제 참혹한 전장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완전히 산산조각 납니다. 포화 속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잘 훈련된 유기체적 폭격기 팀의 멋진 비행이 아니라, 팔다리가 잘려 나간 청년들과 무너진 폐허 속에서 울부짖는 난민들의 참혹한 현실이었습니다. 1942년의 낙관론은 전선의 피비린내를 통과하며 극도로 차분하고 냉소적인 리얼리즘으로 정제됩니다. 『폭격기 출격』에서 그가 그려낸 유기체적 팀워크의 이상은, 종군기자로서 목격한 전쟁의 실제 참상 앞에서 하나의 이상론으로 재평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논픽션은 스타인벡이 순수한 서부의 자연주의 작가에서 인류의 보편적 고통을 고발하는 세계적 거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했던 뼈아픈 통과의례이자 문학적 징검다리였습니다.

이러한 집단 인간에 대한 관심은 이후 『통조림 공장가』에서 지역 공동체의 유기적 삶으로, 『코르테스의 바다』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생명망으로 바라보는 생태학적 사유로 계속 확장됩니다. 즉 『폭격기 출격』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미 후기 스타인벡의 철학을 예고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하나의 논픽션이 그의 문학 세계 전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단순한 시국 대응물로만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폭격기 출격』은 출간 당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하늘로 이끌었고, 스타인벡은 약속대로 인세 전액을 군인 구호 기금에 기부하며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문학사적 관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자원입대 독려용 책자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폭력 앞에서도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존엄성과, 서로를 지켜주는 연대의 힘을 믿었던 한 작가가 펜과 칼 사이에서 써 내려간 애달픈 이중주였습니다.

『폭격기 출격』을 다시 읽으면 폭탄은 기억에 오래 남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를 신뢰하며 하나의 임무를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걸작과 소품 사이의 경계에서, 『폭격기 출격』은 오히려 스타인벡 문학의 뿌리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텍스트로 다시 자리매김할 자격이 있습니다. 가장 어두운 시대의 한복판에서도 인간의 얼굴을 찾아내려 했던 위대한 문학가의 시선이 그 안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잊힌 논픽션을 8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부 링크 추천:

  1.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시리즈 — 민중의 대변자, 공동체의 탄생
  2. 『의심스러운 싸움』(In Dubious Battle) — 팔랑크스 이론 원류
  3. 『통조림 공장가』(Cannery Row) 시리즈 — 공동체 철학의 확장
  4. 『코르테스의 바다』 —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전환
  5. 스타인벡 생가와 국립 스타인벡 센터 답사기 — 필자 현장 경험

외부 링크 추천:

  1. National Steinbeck Center (steinbeck.org)
  2. The Martha Heasley Cox Center for Steinbeck Studies, San José Stat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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