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공장가』1편 — 우리는 왜 서로에게 빚을 지며 살아가는가?

누군가에게 잘해주고 나서, 이런 생각이 스친 적 있으신가요?

‘내가 괜히 했나.’

말하기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솔직히 한 번쯤은 다들 그런 거 아닌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이 불편한 질문을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이 1945년에 그의 소설 한 편으로 정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통조림 공장가』(Cannery Row)입니다.


“교수님, 사람이 진짜 대가 없이 베풀 수 있나요?”

대학에서 30년 넘게 영미문학을 가르치면서,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수님, 결국 인간은 다 자기 좋으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 계산기 안 두드리고 남을 돕는 게 정말 가능해요?”

처음엔 솔직히 당황했어요. 셰익스피어와 포크너를 논하는 수업에서 갑자기 이런 ‘세속적인’ 질문이 나오니까요. 근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 질문 때문이라는 걸.

소설 속 인물들은 늘 이기심과 이타심의 경계선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거든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책장에서 꺼내 드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스타인벡의 『통조림 공장가』(Cannery Row)입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별로였어요. 특별한 사건도 없고, 줄거리는 파편화되어 있고, 결말도 흐릿했거든요. 그런데 두 번, 세 번 다시 읽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인간관계의 밑바닥에 흐르는 아주 불편한 진실을 담은 책이에요.

대공황 시기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통조림 공장가릐 풍경

“창녀와 성자”가 한 울타리에 산다는 것

스타인벡은 첫 페이지부터 독자의 뒤통수를 칩니다.

“창녀, 뚜쟁이, 도박꾼, 개자식들이거나, 아니면 성자와 천사와 순교자와 거룩한 사람들.”

수업에서 이 대목을 읽어주면 학생들 표정이 묘하게 바뀌어요. 마치 자기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요.

‘그래서 어느 쪽인데?’ 싶죠?

근데 읽다 보면 알게 됩니다. 스타인벡이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둘은 다르지 않다. 같은 방식으로 산다.

대공황이 덮친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의 뒷골목, 통조림 공장가(Cannery Row). 현금이 씨가 마른 이 통조림 공장가에서 사람들은 굶지 않아요. 서로 돕고, 싸우고, 화해하고, 심지어 파티까지 엽니다.

도대체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집세도 안 내는데 쫓겨나지 않는 이유

소설 속 인물 네 명만 알면 이 동네의 이상한 생태계가 보입니다.

덕(Doc) — 해양생물학자. 서부생물 연구소 운영. 마을의 정신적 지주이자 가장 지적인 존재.

리청(Lee Chong) — 중국계 식료품 가게 주인. 마을의 실질적인 경제 허브.

맥과 그 패거리(Mack and the boys) — 일정한 직업이 없는 백수들. 리청의 어분창고에 살아요. 집세는 안 냅니다.

도라(Dora) — 사창가 ‘베어 플래그’의 주인. 불법 사업을 하지만 누구보다 의리 있는 여성.

여기서 가장 이상한 장면이 하나 있어요. 맥 패거리는 집세를 한 푼도 안 냅니다. 근데 리청은 그들을 내쫓지 않아요.

‘착해서?’ 아닙니다.

리청은 계산이 빠른 상인이에요. 맥 패거리가 그 창고에 버티고 앉아 있으면, 다른 진짜 질 나쁜 불량배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또 맥 일당은 돈이 생기면 어김없이 리청 가게에서 씁니다.

돈이라는 화폐는 오가지 않았지만, ‘보호’와 ‘공간’이 정교하게 교환되고 있는 겁니다.

이건 거래일까요? 아니면 관계일까요?

몬트레이 항구와 통조림 공장가 모습

우리도 사실 다 계산하고 있다 — 호만스의 냉정한 공식

여기서 한 사람을 잠깐 소개할게요.

사회심리학자 조지 호만스(George Homans). 1958년 논문에서 아주 차가운 공식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처음 이 공식을 수업에서 꺼내면 학생들이 반발해요.

“교수님, 사랑이나 우정도 결국 비즈니스라는 건가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연락 오면 반가운 친구가 있고, 괜히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밥 한 끼 사고 싶은 선배가 있고, 같이 있으면 에너지가 방전되는 사람이 있고요.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 공식을 끊임없이 돌리고 있는 겁니다. 다만 숫자가 아니라 감정으로.

거부감이 드는 건 이해해요.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호만스가 틀렸다기보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한 거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스타인벡이 이 공식을 뒤집는 방법

그런데 스타인벡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공식을 완전히 비틀어버려요.

일반 사회에서 보상(Reward)은 돈, 성공, 지위입니다. 통조림 공장가에서는 달라요. 신뢰, 관계, 소속감이 보상입니다.

덕을 보세요. 그는 아무 조건 없이 나눕니다. 지식을, 음악을, 와인을, 시간을. 무언가를 돌려받으려고 전략을 짠 게 아니에요. 그냥 자기가 아는 것들을 나눴을 뿐입니다.

그런데 소설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를 아는 모두가 그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그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모두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이지 덕에게 뭔가 좋은 일을 좀 해줘야 하는데.'”

계산하지 않았는데,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대가 없는 호의가 쌓여 ‘집단적인 부채감’이 되고, 그 부채감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가 된 거예요.

이게 스타인벡이 발견한 핵심입니다.

작가 존 스타인벡 흑백 초상

조수 웅덩이, 우리 삶의 축소판

스타인벡은 이 소설을 쓰기 전, 해양생물학자 에드 리켓츠(Ed Ricketts)와 함께 캘리포니아 만을 직접 탐사했습니다.

그가 관찰한 조수 웅덩이(tidal pool)는 밀물 썰물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작은 생태계예요. 포식자도 있고, 기생충도 있고, 아름다운 불가사리도 있습니다. 누구 하나 고결하지 않지만, 그중 하나만 사라져도 웅덩이 전체의 균형이 깨집니다.

통조림 공장가가 바로 이 조수 웅덩이예요.

리청이 없으면 보급로가 끊깁니다. 도라가 없으면 — 전염병이 동네를 덮쳤을 때 밤새 아픈 사람 곁에 앉아 있던 게 도라와 그 집 여자들이었거든요 — 위기 때 공동체가 버텨낼 수 없어요. 맥 패거리가 없으면 마을의 특유한 활기, 그 시끄럽고 따뜻한 에너지가 사라집니다.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 없으세요?

딱히 잘난 구석은 없어 보이는데, 그 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이상하게 허전한 그런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 삶의 조수 웅덩이 구성원입니다.


친절은 정말 실패자의 특징일까

소설 후반부에서 덕은 아주 뼈아픈 말을 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미덕들 — 친절이나 관용, 개방성, 정직성 — 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실패에 따르는 것들이야. 우리가 혐오하는 특징들 — 날카로움, 탐욕, 이기주의 — 이것이 성공의 특징들이지.”

수업에서 이 구절을 읽어주면 30초 정도 무거운 정적이 흐릅니다.

누군가는 억울해하고, 누군가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엔진 속에서, 친절한 사람은 ‘호구’가 되기 십상이니까요.

근데 스타인벡은 이 문장으로 고발을 하면서, 동시에 질문을 던집니다.

성공의 특징을 가졌지만 고립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실패의 특징을 가졌지만 끈끈하게 연결된 삶을 살 것인가.

그는 답을 내리지 않아요. 그냥 통조림 공장가라는 작은 웅덩이를 우리 앞에 보여줄 뿐입니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면서요.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으세요?


글을 마치며 — 당신의 ‘덕’은 누구인가요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빚을 지며 살아갑니다.

그 빚은 때로 돈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마음의 빚입니다. 누군가의 조건 없는 친절,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 아무 이유 없이 내 얘기를 들어준 그 시간 같은 것들이요.

오늘 밤 잠들기 전에 한번 떠올려보셨으면 합니다. 내 삶의 조수 웅덩이, 즉 통조림 공장가에서, 아무 이유 없이 잘해주고 싶은 ‘덕’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내일 가벼운 안부 인사 하나 건네보세요. 스타인벡이 말한 ‘의도 없는 교환’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니까요.


다음 2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덕이라는 인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겁니다. 특히 그의 선한 의지가 어떻게 예기치 못한 비극으로 이어지는지 — 프랭키라는 소년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관계의 또 다른 이면을 살펴볼 거예요. 착하게 살면 정말 손해일까요? 덕의 이야기가 그 질문에 아주 불편한 방식으로 답해줍니다.

2편 바로가기: 친절은 왜 실패의 특징이 되는가?
3편 바로가기: 돈 없이 굴러가는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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