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벡 살리나스 — 23년 전, 작가의 땅을 처음 밟던 날
외장하드를 정리하며 옛 사진첩을 뒤지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참… 젊었었네.”
2003년 5월 8일. 스타인벡 살리나스 —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Salinas).
낯선 교차로 앞에 서 있는 40대 초반의 제 모습이 거기 있었습니다. 회색 하늘 아래, 아직 꽃이 채 피지 않은 나뭇가지 사이로 두 개의 초록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Stone St & Central Av.
지도에서 수십 번 봤던 바로 그 이름. 그런데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가슴 한켠이 이상하게 두근거렸습니다.
아, 여기구나. 스타인벡이 걸었던 바로 그 거리.
왜 굳이 살리나스(Salinas)까지 갔을까?
여러분은 이런 경험 해보셨나요?
드라마 《겨울연가》를 보고 남이섬으로 달려가고, 《오징어 게임》 촬영지를 찾아 전국을 누비는 분들 있잖아요. 영화 《해리포터》 팬들은 영국까지 날아가서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 앞에서 사진 찍고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너무 오래 읽다 보면, 어떤 작가는 더 이상 ‘읽는 대상’이 아니라 직접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되는 순간이 옵니다.
저에게 그 작가가 바로 존 스타인벡이었습니다.
저는 존 스타인벡 소설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스타인벡 관련 논문을 쓰고, 스타인벡 관련 강의를 하며 그의 문장을 수백 번 읽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속의 스타인벡은 알겠는데, 그가 실제로 숨 쉬었던 공간은 모르는 게 아닐까?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읽을 때마다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이 사람 스타인벡이 바라본 캘리포니아의 하늘은 어떤 색이었을까? 그가 자란 거리의 공기는 어떤 냄새였을까? 그가 사랑하고 증오했던 이 땅은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미국문학을 강의하면서 정작 내가 전공한 작가의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어딘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스타인벡도 똑같은 이유로 길을 떠났습니다. 1960년, 58세의 스타인벡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미국에 대해 글을 써왔지만, 정작 미국을 제대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애견 찰리와 함께 트럭을 몰고 미국 전역을 누볐습니다. 책상 위의 미국이 아니라, 발로 밟은 미국을 알고 싶었던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책 속의 스타인벡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숨 쉬었던 공간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비행기 티켓을 끊고, 2003년 봄, 캘리포니아로 향했습니다.
첫 번째 장소: Stone St & Central Av —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

스타인벡 살리나스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달랐습니다.
이 평범해 보이는 교차로가 제게 특별했던 이유는 단 하나 — 이곳이 스타인벡이 매일 걸었을, 그리고 그의 소설 속 수많은 인물이 살아 숨 쉬었을 바로 그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의 배경이 된 살리나스 계곡. 그 뜨거운 공기와 흙냄새가 이 교차로에서 시작됩니다.
위대한 문학은 상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그 교차로 앞에서 처음으로 몸으로 느꼈습니다.
두 번째 장소: Steinbeck House — 그가 태어난 집 앞에서

스타인벡 살리나스 시내 한복판, 132 Central Avenue.
빅토리아 양식의 2층 건물이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Steinbeck House Restaurant & Gift Shop —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곳은 존 스타인벡이 1902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바로 그 집입니다.
현관 앞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습니다.
이 계단을 어린 스타인벡도 뛰어 올랐겠구나.
그 생각 하나에, 20년 넘게 책으로만 만났던 작가가 갑자기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문학은 추상이 아니었습니다. 작가는 허공에서 탄생하지 않습니다. 그도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이 거리에서 뛰놀던 소년이었으며, 이 창문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던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스타인벡의 문장은 ‘텍스트’가 아니라 삶의 흔적으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장소: John Steinbeck Library — 그의 이름을 단 도서관

생가에서 몇 블록 걷지 않아 John Steinbeck Library가 나타났습니다.
하얀 벽돌 건물 정면에 굵직하게 새겨진 이름 — JOHN STEINBECK LIBRARY.
저는 그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한 작가의 이름이 지역 공동체의 지혜를 담는 그릇이 된다는 것. 살리나스 사람들이 그를 단순한 유명 작가가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로 기억하고 있다는 게, 그 건물 하나에서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도서관 안에는 스타인벡의 초판본, 친필 편지, 희귀 사진들이 가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자료들이 유리 너머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에 던진 수많은 질문과 해답이 이 도서관의 책장 사이사이에서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 도서관이 궁금하신 분들은 꼭 가보세요. 스타인벡 살리나스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곳은 절대 빠뜨리면 안 됩니다.
🔗 [National Steinbeck Center (steinbeck.org)]
네 번째 장소: 동상 앞에서 — 작가와 처음으로 눈을 맞추다

도서관 옆 정원에 스타인벡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는 작업복 차림에 손을 자연스럽게 내리고, 약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농장 노동자들과 함께 땅을 밟았던 그 눈빛 그대로였습니다.
동상 옆에 나란히 섰습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순간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20년 넘게 논문으로, 강의로, 책으로만 만났던 그 사람 옆에 처음으로 나란히 선 느낌. 말로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속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한국에서 왔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스타인벡 살리나스에서의 그 며칠은, 23년이 지난 지금도 제 안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다음 날: UCLA Royce Hall — 또 다른 문학의 땅

스타인벡 살리나스를 떠나 다음 날(5월 9일)은 UCLA 캠퍼스를 걸었습니다.
중세 이탈리아 양식을 본뜬 붉은 벽돌의 Royce Hall. 눈부신 햇살 아래 학생들이 오가는 그 풍경은, 제가 상상했던 미국 대학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스타인벡이 직접 UCLA와 깊은 인연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살리나스에서 시작된 그 여정을 마음에 품고 이 캠퍼스를 걸으면서, 저는 계속 그의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삶을 깊이 본 사람이 쓴다는 것. 그리고 그 삶의 현장이 바로 어제 제가 걸었던 그 거리였다는 것.
스타인벡의 고향이 대지의 생명력을 가르쳐주었다면, UCLA는 제게 문학을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지적 토양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UCLA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친 뒤, 저는 다시 차를 돌렸습니다. 이번 목적지는 산호세(San José)였습니다. 참고로, 스타인벡 전공자라면 꼭 알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UCLA가 아니라 바로 옆 도시 산호세 —
산호세 주립대학교(SJSU)에는 Martha Heasley Cox Center for Steinbeck Studies가 있습니다.
1973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의 스타인벡 아카이브로, 원고, 친필 편지, 희귀본 등 50,000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스타인벡을 깊이 공부하고 싶다면 반드시 한 번 들러야 할 곳입니다.
🔗 [Martha Heasley Cox Center for Steinbeck Studies 공식 사이트]
다섯 번째 장소: 산호세, Martha Heasley Cox Center — 또 하나의 방문학자 시절
스타인벡 살리나스 방문을 마치고 찾아간 산호세 주립대학교(SJSU) 캠퍼스 한쪽에 자리한 Martha Heasley Cox Center for Steinbeck Studies. 이곳이 그해 제가 방문학자로 머물렀던 또 다른 거점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서 한 분이 조용히 자료실로 안내해주셨습니다. 1973년에 설립된 이곳은 스타인벡 관련 자료 5만 점 이상을 소장한,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인벡 아카이브입니다. 유리 진열장 너머가 아니라,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자료들 앞에 앉았을 때의 그 떨림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스타인벡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 한 장. 손때 묻은 초고 원고.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그의 필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논문으로만, 활자로만 만났던 문장들이 그 순간 ‘누군가 실제로 쓴 글’이라는 사실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며칠 동안 그 자료실에 앉아 자료를 읽어 내려가며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살리나스에서 그의 ‘공간’을 만났다면, 이곳 산호세에서는 그의 ‘손길’을 만났구나.
지금도 스타인벡을 깊이 공부하고 싶은 분들께는 망설임 없이 이곳을 추천합니다. 다만 이제는 추천이 아니라, 제가 그곳에 앉아 보낸 며칠의 기억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 [Martha Heasley Cox Center for Steinbeck Studies 공식 사이트]
왜 나는 그렇게 오래 스타인벡에 빠져 있었을까?
스타인벡 살리나스에서 돌아온 뒤, 저는 이전과 다른 눈으로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스타인벡을 연구하셨나요?”
사실 답은 단순합니다.
스타인벡은 인간을 지나치게 미화하지도, 지나치게 냉소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의 추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바라볼 줄 알았습니다. 『분노의 포도』에서, 『생쥐와 인간』에서, 『통조림 공장가』에서, 『불만의 겨울』에서 그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존엄해지는가? 우리는 왜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 선하게 산다는 것은 가능한가?
저는 그 질문들이 문학을 넘어 삶의 질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질문 앞에서 여전히 설레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스타인벡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스타인벡을 통해 인간을 연구해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며 — 23년이 지난 지금,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스타인벡 살리나스 — 그 이름만으로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곳입니다.
오래된 외장하드에 묵혀 두었던 스타인벡 살리나스 사진들을 이리저리 보면서 2003년 5월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40대 초반이었고, 스타인벡을 향한 열정 하나로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지금은 머리에 흰 것도 좀 늘었고, 블로그도 하고, Youtube도 하고, … 이렇게 여러분과 글도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스타인벡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그 두근거림. 그리고 그 두근거림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 그게 제가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사진 속 그 청년은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 계속 걸어가.”
스타인벡 살리나스는 제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문학을 다시 배운 교실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작가가 있으신가요?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그 작가가 살았던 곳까지 가보고 싶게 만드는 작가. 혹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문학의 고향이 있으신가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