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공장가』 3편 — 돈 없이 굴러가는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예요. 모든 것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뜻이죠.

그런데 스타인벡의 『통조림 공장가』(Cannery Row, 1945)를 읽다 보면 묘한 의문이 생깁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분명히 돈이 없습니다. 현금이 거의 없고, 변변한 직업도 없고, 내일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굶지 않습니다. 서로 돕고, 웃고, 파티까지 엽니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이것이 통조림 공장가가 품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비밀입니다. 그리고 이 비밀의 열쇠를 쥔 사람들이 바로 맥(Mack)도라(Dora) 입니다.

스타인벡 『통조림 공장가』의 실제 배경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캐너리 로우 거리

맥(Mack) — 백수인데 왜 아무도 뭐라 안 할까

맥은 솔직히 말하면 백수입니다.

팰리스 플롭하우스(Palace Flophouse)라는 어분창고에 패거리들과 살고 있습니다. 집세는 내지 않습니다. 일정한 직업도 없습니다. 그런데 통조림 공장가에서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덕(Doc)은 맥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Mack and the boys … they could be anything, and they chose to do this.”

“맥과 패거리들은 뭐든 될 수 있었는데, 이걸 선택했다.”

스타인벡은 맥을 단순한 게으름뱅이로 그리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적 성공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맥은 영리합니다. 그것도 상당히.


어분창고를 얻은 협상 — 맥의 천재적인 거래법

맥이 어분창고를 얻는 장면은 통조림 공장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리청(Lee Chong)이 이 창고의 주인입니다. 맥은 여기 살고 싶습니다. 돈은 없습니다.

그래서 맥이 리청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Suppose me and my boys was to live in that old building. We’d keep it up and we’d see nobody bothered it.”

“저와 제 친구들이 저 낡은 건물에 살면 어떨까요. 건물을 잘 관리하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겁니다.”

리청은 속으로 계산합니다. ‘만약 내가 거부하면, 이 사람들이 직접 유리창을 깨는 것 아닌가.’

결국 합의가 됩니다. 일주일 집세 5달러. 물론 아무도 낼 생각이 없었지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리청은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맥 패거리가 거기 있으니 진짜 불량배들이 얼씬도 못했고, 그들이 돈이 생기면 어김없이 리청 가게에서 썼습니다. 집세 이상의 가치가 다른 방식으로 돌아온 셈이었죠.

현금이 오가지 않았음에도 완벽한 교환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것이 통조림 공장가의 경제 방식입니다.


개구리 원정대 — 맥의 협상술이 빛나는 순간

맥의 재간이 가장 빛나는 장면은 개구리 채집 원정입니다.

덕이 해양생물 연구 주문을 받았고, 맥은 덕을 위해 파티를 열고 싶었습니다.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를 잡아 덕에게 팔기로 합니다. 개구리 한 마리에 5센트.

리청의 트럭을 빌려야 했습니다. 맥이 리청에게 말합니다.

“리 선생, 덕한테 큰 빚 진 거 알죠? 이게 그걸 갚을 기회입니다.”

리청은 트럭을 내줍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남의 농장입니다. 화가 난 농장 주인이 총을 들고 나타납니다. 맥은 즉시 사과하면서 말합니다.

“군인이시죠? 척 보면 압니다. 어깨가 다릅니다. 저도 군대에 오래 있었거든요.”

농장 주인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맥은 계속 말합니다. 개가 다리를 절고 있으니 치료해주겠다고 하고, 개가 명견 놀라(Nola)를 닮았다고 칭찬합니다. 결국 농장 주인은 집 옆 웅덩이에서 개구리를 실컷 잡아가라고 허락합니다.

그 패거리들이 감탄하며 한 말이 이 장면의 압권입니다.

“He could have have been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if he wanted.”

“맥이 원했다면 미국 대통령도 됐을 것이다.”

우스운 말처럼 들리지만, 이 장면을 읽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혹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지 않으신가요? 딱히 가진 게 없어 보이는데, 어디서든 원하는 걸 얻어내는 그런 사람.어디서든 원하는 걸 얻어내는 그런 사람.

통조림 공장가의 배경이 된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항구 풍경

도라(Dora) — 가장 많이 내놓는 사람이 가장 낮은 취급을 받는다

이제 도라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맥이 협상의 달인이라면, 도라는 이 공동체의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합니다.

도라는 베어 플래그 식당(Bear Flag Restaurant)이라는 매춘업소의 주인입니다. 통조림 공장가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취급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스타인벡은 이 인물을 통해 아주 불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도라는 불법 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내야 합니다. 소설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If the police give a dance for their pension fund and everyone else gives a dollar, Dora has to give fifty dollars.”

“경찰이 연금 기금 행사를 열면, 다른 사람들은 1달러씩 낼 때 도라는 50달러를 내야 한다.”

상업회의소 행사에서 상인들이 5달러 낼 때, 도라는 100달러를 냅니다. 적십자, 공동모금, 보이스카우트 — 전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곳에 그녀의 돈이 들어갑니다. 억울할 법도 하지만 도라는 묵묵히 그 짐을 집니다.

그런데 스타인벡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전염병이 통조림 공장가를 덮쳤을 때의 일입니다. 몬트레이 의사들이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덕이 도라에게 말합니다.

도라가 덕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Is there anything I can do?”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덕이 답합니다.

“You know there is. People get so scared and helpless. They’re scared to death and they’re scared to be alone. If you, or some of the girls, could just sit with them.”

“물론 있죠. 사람들이 너무 겁에 질려 무력해져 있습니다. 죽도록 무섭고, 혼자 있는 것도 두렵습니다. 도라나 아가씨 몇 명이 그냥 곁에 앉아만 있어줘도 됩니다.”

도라는 베어 플래그로 돌아가 봉사단을 조직합니다. 매춘부들이 간호사가 된 것입니다.

사회에서 가장 낮은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역설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스타인벡은 이 역설을 통해 묻습니다. “진짜 선한 사람은 누구인가?”를.


행위의 경제 — 스타인벡이 만든 다른 세계

이제 큰 그림을 볼 차례입니다.

통조림 공장가에서 작동하는 경제는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 경제와 다릅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치의 기준은 입니다. 통조림 공장가에서 가치의 기준은 행위입니다.

맥이 리청에게 준 것은 돈이 아니라 ‘보호’였습니다. 도라가 공동체에 준 것은 고액 기부금이 아니라 ‘헌신’이었습니다. 덕이 동네 사람들에게 준 것은 서비스 요금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스타인벡 연구자들은 이것을 “행위의 경제”(economy of behavior) 라고 부릅니다.

물질적 이득보다 관계와 행동이 우선하는 체계. 돈보다 신뢰, 계약보다 부채감, 교환보다 호의가 중심이 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가장 강한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이 준 사람이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돈보다 신뢰, 계약보다 부채감이 중심이 되는 이 느슨한 연대는 현대의 각박한 시스템에 지친 우리에게 묘한 해방감을 줍니다.


조수 웅덩이처럼 — 각자가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

1편에서 조수 웅덩이 이야기를 다룬 바 있습니다.

[ 1편: 우리는 왜 서로에게 빚을 지며 살아가는가?]

밀물과 썰물이 만드는 작은 생태계. 그 안의 누구 하나만 사라져도 전체 균형이 무너지는 세계입니다.

통조림 공장가가 바로 그렇습니다.

리청이 없으면 보급로가 끊깁니다. 맥이 없으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활기가 사라집니다. 도라가 없으면 위기 때 공동체를 버텨줄 사람이 없습니다. 덕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을 이어주는 구심점이 사라집니다.

겉으로 보면 다들 부족해 보입니다. 결함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전체 안에서는 각자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입니다.

당신이 속한 공동체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딱히 잘난 구석은 없어 보이는데, 그 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이상하게 허전한 그런 사람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경제 체제 속에서 살고 계신가요? 오직 통장 잔고로만 평가받는 숫자의 세계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는 ‘행위의 세계’인가요?

통조림 공장가의 맥과 패거리들을 연상시키는 1940년대 항구 부두의 남녀 공동체

스타인벡이 이 소설로 하고 싶었던 말

『통조림 공장가』는 1945년에 출판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해입니다.

물질적으로 가장 황폐했던 시대에, 스타인벡은 돈 없이 굴러가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시 돈과 성공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할 때, 스타인벡은 조용히 물었던 것 아닐까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맥처럼 가진 건 없어도 자유롭게, 도라처럼 낮은 취급을 받으면서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덕처럼 계산 없이 주는 삶.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통조림 공장가입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파티는 실패하고, 프랭키는 시설로 보내지고, 맥의 계획은 엉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딘가, 우리가 원하는 세계처럼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시리즈를 마치며 — 그래서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3편에 걸쳐 통조림 공장가를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1편에서는 왜 우리가 서로에게 빚을 지며 살아가는지. 2편에서는 친절한 사람이 치르는 비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3편에서는 돈 없이도 굴러가는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살펴봤습니다.

스타인벡은 이 소설에서 정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남길 뿐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제 안에서 살고 싶은가?

돈의 경제인가요, 행위의 경제인가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지금 당신이 속한 공동체 — 직장이든, 가족이든, 친구 모임이든 — 거기서 당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맥인가요, 덕인가요, 도라인가요?

아니면 통조림 공장가에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당신만의 자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1편: 우리는 왜 서로에게 빚을 지며 살아가는가?]

[← 2편: 친절은 왜 실패의 특징이 되는가?]

[외부 링크]


참고: John Steinbeck, Cannery Row (Viking Press, 1945) / George C. Homans, “Social Behavior as Exchange,”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Vol. 63, No. 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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