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집필한 매사추세츠 피츠필드 애로우헤드 가을 전경

허먼 멜빌의 『모비딕』— 5가지 시선으로 읽는 미국 해양문학의 정점과 문학기행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의 『모비딕』(Moby-Dick)은 미국문학이 인간 존재의 심연까지 내려간 가장 거대한 해양 서사입니다. 하지만 매사추세츠 피츠필드(Pittsfield)의 농가 애로우헤드(Arrowhead)에 서거나, 뉴잉글랜드의 항구를 실제로 걸으면, 그 소설이 어떤 땅과 바람과 절망 속에서 태어났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 글에서 멜빌의 생애와 『모비딕』의 문학적 핵심, 그리고 미국 동부 문학기행의 공간 속에 새겨진 그의 자취를 함께 걸어보겠습니다.

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집필한 매사추세츠 피츠필드 애로우헤드 전경

1. 피츠필드의 농가, 그 창문 너머로 — 허먼 멜빌의 삶과 시대

허먼 멜빌은 뉴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집안이 몰락하면서 열두 살에 학교를 떠나야 했고, 스무 살 무렵 상선을 타기 시작했다. 포경선 애크슈넷(Acushnet)호를 탈출해 폴리네시아 원주민 부족과 함께 지낸 경험, 군함에서의 복무 체험 — 이 모든 것이 훗날 작품의 살과 피가 되었다. 3년 넘는 바다 생활이 그의 문학적 자산이었다.

1850년, 멜빌은 피츠필드에 농장을 구입해 ‘애로우헤드(Arrowhead)’라고 이름 붙인다. 허먼 멜빌 모비딕은 바로 이 집에서 1851년 7월에 완성되었다. 애로우헤드는 단순한 전원주택이 아니었다. 그곳은 멜빌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싸우던 사유의 공간이었다. 멜빌은 이 농가의 창문에서 그린록(Greylock) 산을 바라보며 향유고래의 등을 떠올렸다고 전해진다.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의 능선이 실제로 향유고래의 등 실루엣과 닮아 있다고 하니, 문학적 상상력이 얼마나 구체적인 장소성에서 탄생하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피츠필드에서 가까운 레녹스(Lenox)에는 열다섯 살 위인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이 살고 있었다. 멜빌은 『모비딕』의 헌사에 “너새니얼 호손의 천재성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고 썼을 정도로 호손을 흠모했다. 1851년 11월 호손이 레녹스를 떠난 뒤로는 멜빌이 일방적으로 그리워하는 관계가 되었고, 그 고독은 이후 작품들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필자가 그동안 텍스트로만 읽어온 미국문학의 공간들을 실제로 밟을 때마다 느끼는 전율이 있다. 2003년 연구년 기간에 살리나스(Salinas)의 스타인벡 생가를 걷고, 산호세 주립대학교의 마사 히즐리 콕스 스타인벡 센터에서 방문교수로 지내며, 몬터레이 캐너리 로우(Cannery Row)를 거닐었을 때가 그랬다. 텍스트와 장소가 만나는 순간, 학자는 독자가 되고 독자는 순례자가 된다. 멜빌의 애로우헤드 역시 그런 장소다. 언젠가 그 창문 앞에 한번쯤 서보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것은, 아마 문학을 업으로 삼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감정일 것이다.

허먼 멜빌 모비딕이 출간된 1851년 당시, 미국 사회는 뉴잉글랜드 중심의 청교도 정신과 민주주의적 생존경쟁이 혼재하던 시기였다. 원주민 문제, 흑인 노예제, 인종·사회적 갈등이 깊숙이 자리한 가운데, 포경 산업은 미국 자본주의와 팽창주의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모비딕』 이후 대중의 인기를 잃은 멜빌은 1866년부터 약 20년간 뉴욕 세관 감독관으로 일했다. 링컨에게도, 호놀룰루 영사직도 모두 좌절되었다. 1891년 9월 28일, 일흔두 살의 멜빌은 심장비대증으로 세상을 떴고, 뉴욕 브롱크스의 우드론 공동묘지(Woodlawn Cemetery)에 안장되었다. 문학사는 종종 동시대가 이해하지 못했던 작가들을 뒤늦게 복원한다. 멜빌이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뉴욕 브롱크스 우드론 공동묘지에 안장된 허먼 멜빌 묘비

2. 고래의 도시 뉴베드포드에서 마주한 『모비딕』의 서막 — 허먼 멜빌 모비딕과 장소성

그동안 대학강단과 연구실에서 텍스트로만 읽어온 공간을 실제로 밟았을 때의 전율은 필설로 다 하기 어렵다. 미국 동부 항구 도시 뉴베드포드(New Bedford)의 ‘선원 베델(Seamen’s Bethel)’에 들어서자마자, 소설 속에서 이슈미엘이 보았던 차가운 대리석 위령비들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이름이 새겨진 그곳에는 소설 속 문장들이 습기 찬 공기와 섞여 생생한 육성으로 들려오는 듯하다. 항구의 짠내와 낡은 목조 건물의 삐걱거림은 150년 전 멜빌이 느꼈을 그 감각 그대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이슈미엘은 이렇게 고백한다.

“Whenever I find myself growing grim about the mouth; whenever it is a damp, drizzly November in my soul… I account it high time to get to sea as soon as I can.”

(내 입가가 험악해질 때마다, 내 영혼에 축축하고 가랑비 내리는 11월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뉴베드포드의 부두에 서서 대서양의 검푸른 물결을 바라보면, 왜 멜빌이 이 거대한 심연을 문학의 무대로 삼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곳은 단순히 소설의 배경이 아니라, 근대 문명이 자연과 맞부딪히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던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몬터레이 캐너리 로우를 직접 걸으며 스타인벡 작품 속 냄새와 바람이 실제 공간에 남아 있다는 감각을 받았던 것처럼, 뉴잉글랜드의 바닷가에서도 『모비딕』의 문장들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실존적 감각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허먼 멜빌 모비딕의 배 이름 ‘피쿼드(Pequod)’는 뉴잉글랜드 원주민의 사라진 부족 이름이다. 이미 작품 내부에 미국의 폭력적 역사와 식민주의의 그림자가 들어와 있음을 암시하는 작명이다. 당시 포경업은 미국 동북부 대서양 연안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이념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고래는 에너지 자원(특히 램프)의 주요 공급원이었고, 포경 산업은 서부 개척과 연장선상에 놓인 대외 팽창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런 역사적 맥락 위에서 『모비딕』은 단순한 모험소설을 넘어 미국 문명의 어두운 이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 된다.

허먼 멜빌 모비딕의 배경이 된 19세기 뉴잉글랜드 포경선

3. 에이해브의 광기와 이슈미엘의 영성 — 허먼 멜빌 모비딕의 문학적 핵심

허먼 멜빌 모비딕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에이해브(Ahab) 선장이라는 인물에 있다. 그의 이름은 구약성서 「열왕기」의 아합 왕에서 유래한다. 이교도 왕녀 이세벨(Jezebel)과 결혼하고 바알 신을 받든 폭군처럼, 소설 속 에이해브는 “신을 믿지 않는 신적인 남성”으로서 파우스트적 탐구 자세로 피쿼드호를 이끈다.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추격하는 이유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그는 흰 고래를 “세상의 모든 사악한 힘들이 하나로 결집되어 육화된 것”으로 본다. 이슈미엘은 에이해브를 처음 만났을 때 온 몸이 불길에 그슬린 채 “화형 말뚝에서 풀려나온 사람”으로, 또는 “단단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페르세우스상처럼 변형시킬 수 없는 주형으로 빚어진 것 같았다”고 묘사한다.

에이해브의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스스로를 “운명의 부관”이라 부르며, 세계를 이분법으로만 파악한다. 선과 악, 나와 타자, 문명과 야만 — 이 경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고착시킬 때, 인간은 기계가 된다. “나는 모욕을 당하면 태양일지라도 무찌르고 만다”는 그의 독백은, 인간 자아의 절대화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19세기 문학의 가장 섬뜩한 장면 중 하나다. 그의 분노와 집착은 외부의 고래만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생명까지 동시에 파괴해가는 과정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에이해브를 “근대인의 전형”으로 읽는다. 실제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에이해브야말로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이라고 평했다. 부조리란 그 원인을 명백히 해명할 수 없는 인간 심리의 다양성과 그로 말미암은 수수께끼 같은 행동을 총칭하는데, 에이해브는 그 전형으로 읽힌다. 또한 D.H. 로렌스(Lawrence)는 이 소설이 “미국 및 서양 역사에 닥칠 파국을 묵시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평했다.

반면, 이슈미엘(Ishmael)은 다른 길을 걷는다. 소설의 첫 문장 “Call me Ishmael”은 미국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중 하나다. 이슈미엘은 구약성서 속 추방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바다로 가는 여행의 의미를 “권총과 탄알의 대용”이라고 스스로 설명한다. 깊은 불행과 울화, 자살에의 충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다로 간다는 것이다.

그 여정에서 이슈미엘은 폴리네시아 섬 출신의 작살잡이 퀴퀙(Queequeg)과 우정을 쌓으며, 소위 ‘야만인’에 대한 편견을 넘어 진정한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슈미엘과 퀴퀙의 관계는 인종과 문명의 경계를 허무는, 19세기 미국문학에서 가장 감동적인 우정 중 하나다.

42장 “백경의 흰색”(The Whiteness of the Whale)에서 이슈미엘은 흰색이 전통적으로 “영적인 것의 가장 의미 깊은 상징이요 그리스도교 신의 베일 자체”인 동시에 “우주의 끔찍한 공허와 광막함”을 암시하는 공포스러운 색이라고 기술한다. 즉 허먼 멜빌 모비딕에서 흰 고래는 의미와 무의미, 충만과 텅 빔,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품은 존재다. 근대적 이분법으로는 결코 포획할 수 없는 생명의 총체, 그것이 모비딕이다.

에이해브에게 모비딕이 절대악의 화신이었다면, 이슈미엘의 눈에 그것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소설 말미에 홀로 살아남은 이슈미엘은 고래들의 무리 한가운데서 어미 고래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탯줄로 연결된 갓난 새끼 고래가 평화롭게 떠 있는 광경을 목격하며 전율한다. 그 순간, “광란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이상한 고요” 속에서 그는 생명의 전일성(全一性)을 어렴풋이 체험한다. 세계를 지배하려 한 에이해브의 패배는 필연이었다. 생명이란 어떤 단일한 의미로도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 모비딕 에이해브 선장 미국문학 상징

4. 강의실과 캐나다에서 — 허먼 멜빌 모비딕을 다시 읽는 이유

허먼 멜빌 모비딕을 처음 텍스트로 만난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그 두꺼운 책을 손에 들고 낯설고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찬 고래학(cetology) 장들을 읽어나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동안 강의실에서 너무 양이 많아서 전편은 아니지만,부분적으로 이 소설을 가르치며 필자가 늘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에이해브는 악당이 아니다. 그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어떤 충동의 극단적 형상이다.”

필자는 최근 캐나다 런던(London, Ontario)에서 지내며 미국 동부 문학 지리를 간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소로우(Thoreau)가 걸었던 월든 호수, 에머슨(Emerson)의 콩코드, 롱펠로우의 케임브리지, 그리고 피츠필드의 애로우헤드 — 이 장소들은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19세기 미국문학의 핵심 지리가 밀집해 있다. 2003년 연구년에 살리나스를 걷고 캐너리 로우를 거닐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 텍스트와 장소가 만나는 순간의 전율.

뉴잉글랜드 미국문학기행 지도 — 허먼 멜빌 피츠필드 소로우 월든 에머슨 롱펠로우 런던 온타리오

이슈미엘은 결국 홀로 살아남아 이 비극을 증언한다.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에이해브처럼 타자를 말살하려 하지 않고, 만물의 연관성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학생들에게 가르쳐온 문학의 힘 —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세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 과 맞닿아 있다.

돌이켜보면 허먼 멜빌 모비딕이 오늘날까지 읽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 그것이 시대를 넘어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5. 영미문학사 속 허먼 멜빌 모비딕 — 왜 지금도 읽어야 하는가

허먼 멜빌 모비딕은 출간 당시 혹독한 비평을 받았다. 영국에서는 에필로그가 삭제된 채 출판되어 독자들이 이슈미엘이 왜 살아남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미국에서도 대중은 이 복잡한 소설에 당혹감을 느꼈다. 멜빌은 실패한 작가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문학적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모비딕』은 미국문학사의 정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허먼 멜빌 모비딕은 생태문학,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영성신학 등 다양한 비평적 시각에서 새롭게 읽히고 있다. 근대문명의 이분법적 폭력,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충동,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파멸 — 이 주제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포경선 피쿼드호가 침몰하는 장면은, 인간 문명이 자연과의 전쟁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지를 170여 년 전에 이미 예언한 것이기도 하다. 허먼 멜빌 모비딕이 위대한 이유는 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흰 고래는 끝내 인간의 언어로 포획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불가해함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다.

총 135장으로 이루어진 장편 『모비딕』의 구성은 치밀하다 — 출항 준비(1~22장), 선원 소개(23~40장), 고래 연구(41~47장), 모비딕 첫 추적과 여러 만남들(52~132장), 그리고 삼일간의 결전과 종막(133~135장). 이 방대한 구조 안에 19세기 미국의 역사, 철학, 신학, 생태학, 인종론이 모두 녹아 있다. 소설은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백과사전이며 철학서이고 성서적 우화다.

언젠가 피츠필드를 직접 방문해 애로우헤드에 서고 싶다. 그리고 그 길을 걷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피츠필드까지의 여정과 뉴베드포드 항구 부두를 강력히 권한다. 그곳에서 여러분만의 모비딕을 마주하고, 마음속에 웅크린 에이해브를 떠나보내며 이슈미엘처럼 새로운 생명의 영성을 길어 올리시길 바란다.

[내부 링크]

▶ 이전 Literary Travels :
🔗 에드거 앨런 포 | 5개 도시로 걷는 미국문학기행
▶ 관련 Steinbeck & Literature:

🔗 『에덴의 동쪽』 팀셸(Timshel) 3가지 의미 — 존 스타인벡이 말한 자유의지와 용서의 철학
▶ 관련 Literary Travels:
🔗
소로우와 월든 호수 — 고독과 자연 속에서 찾은 삶의 본질
🔗
에머슨과 콩코드 — 미국 초월주의의 탄생지를 걷다
🔗
롱펠로우와 케임브리지 — 미국인이 사랑한 시인의 발자취
▶ Life & Humanities:
🔗 2003년 연구년, 살리나스에서 스타인벡을 만나다


[외부 링크]

🔗 Arrowhead — Herman Melville’s Home 공식 사이트
https://www.mobydick.org

🔗 Moby-Dick Big Read — 영문 오디오 프로젝트
https://mobydickbigread.com

🔗 New Bedford Whaling National Historical Park https://www.nps.gov/nr/travel/maritime/new.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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