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 5곳: 애머스트에서 만난 은둔과 시의 탄생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은둔 시인의 영혼과 만나는 지적 여정입니다. 하지만 실제 매사추세츠 주 애머스트(Amherst)를 걸어보면, 교과서 속 박제된 지식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 온몸을 사로잡습니다. 이 글에서는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의 핵심 장소 다섯 곳을 따라 걸으며, 장소와 문학이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과 그녀의 시학이 지닌 깊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흔히 위대한 시인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가 세계를 유랑했거나 격동의 역사 한복판에 섰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은 정반대였다. 그녀는 평생 매사추세츠 주 애머스트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30대 초반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의 집 마당조차 나가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 시인이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애머스트는 더욱 강렬한 문학 성지가 된다. 움직이지 않은 몸이 남긴 약 1,800편의 시. 그 시들이 탄생한 노란 벽돌집 앞에 서면, 문학 기행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은 바로 그 역설에서 시작된다.
2003년 연구년을 보내며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살리나스(Salinas)를 걸었을 때, 필자는 작가와 장소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처음으로 피부로 느꼈다. 스타인벡은 살리나스를 떠남으로써 자신의 문학을 얻었다. 그런데 에밀리 디킨슨은 정반대의 전략을 택했다. 머무름으로써, 아니 머무름을 의지적으로 선택함으로써 그녀는 1,800편의 우주를 지었다. 두 작가의 전략은 완전히 달랐지만, 장소와 문학이 한 몸이라는 사실만큼은 동일했다. 대륙을 오가며 홀로 고독을 감내하던 기러기 아빠 생활의 쓸쓸함과 묘하게 닮아 있는 그 고요함 속에서,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은 평생 텍스트로만 읽어 온 은둔의 공간을 실제로 밟는 전율로 가슴을 거세게 뒤흔들었다.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 첫 번째 장소: The Homestead — 은둔의 집을 찾아서
보스턴에서 서쪽으로 약 140킬로미터, 차로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애머스트가 있다. 애머스트 칼리지(Amherst College)와 매사추세츠 대학교(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가 자리한 전형적인 뉴잉글랜드 대학 도시다. 가을이면 단풍이 붉고 노랗게 물드는 이 작은 도시의 Main Street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연방 양식(Federal style)의 노란 벽돌 저택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에밀리 디킨슨의 생가, The Homestead다.
19세기의 벽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집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창문이 많다. 그것이 첫인상이다. 높고 흰 커튼이 드리워진 창들이 건물 정면을 가득 채운다. 그 창들 너머 2층 남쪽 방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을 살았고, 평생을 썼다. 바깥세상이 그녀에게 오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창문으로 세상을 불러들였다.
The Homestead 바로 옆에는 The Evergreens가 있다. 오빠 오스틴 디킨슨(Austin Dickinson)과 수잰 디킨슨(Susan Dickinson)이 살았던 이탈리아풍 빌라로, 두 집은 지금도 나란히 서 있다. 생가가 내면의 공간이라면 에버그린스는 사회적 공간이었다. 파티와 손님 방문이 이어지던 집. 반면 디킨슨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시를 썼다. 이 두 건물을 나란히 바라보면 그녀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고독과 선택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대표작 「영혼은 스스로 자신의 공동체를 선택한다」(“The Soul Selects Her Own Society”)가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두 건물은 에밀리 디킨슨 박물관(Emily Dickinson Museum)으로 통합 운영되며, 가이드 투어를 통해 시인이 살았던 방, 쓰던 가구, 정원까지 둘러볼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입장권을 받아 들고 현관을 넘어서는 순간, 발밑에서 오래된 나무 마루가 삐걱거린다. 그 소리가 묘하게 문학적이다.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 두 번째 장소: 2층 방과 가능성의 집 — 1,800편의 우주가 탄생한 곳

“저는 가능성의 집에 살아요 / 산문의 집보다 더 아름다운 집이랍니다 / 창문도 더 많고요 / 문들도 더 좋아요”
I dwell in Possibility —
A fairer House than Prose —
More numerous of Windows —
Superior — for Doors — (CP 657)
에밀리 디킨슨이 직접 쓴 이 시를 The Homestead 2층 방에서 다시 읽으면, 단순한 은유가 아님을 깨닫는다. “창문도 더 많고”라는 구절은 실제로 창이 많은 이 집의 구조와 겹친다. 그녀는 자신이 사는 물리적 공간을 시적 공간으로 그대로 옮겨 놓았다.
흔히 에밀리 디킨슨의 은둔을 병적 내성이나 사회 부적응으로 읽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텍스트는 다르게 말한다. 은둔이 본격화된 것은 30대 초반부터였고, 이 시기부터 죽을 때까지 그녀는 약 1,600편의 시를 썼다. 특히 1862년 단 한 해에 350편, 즉 거의 매일 한 편씩 시를 쏟아냈다.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사람의 기록이 아니다. 세상의 소음을 끊고 오직 시에 헌신하기로 의지적으로 결단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녀 자신도 편지에서 썼다. “나 홀로 반항하며 서 있어요”(I am standing alone in rebellion). 마운트 홀리요크 여자 신학교(Mount Holyoke Female Seminary) 시절, 신앙 고백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끝까지 일어서지 않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교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신을 믿는 것을 거부했지만, 신에 대한 탐구를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에밀리 디킨슨의 은둔이 지닌 역설이다. 세상과 단절했지만, 그 단절의 공간에서 신, 죽음, 불멸, 사랑, 자연이라는 인류 보편의 주제들과 치열하게 씨름했다.
The Homestead의 정원에는 그녀가 직접 가꾼 꽃들의 후손이 아직도 피어난다. 에밀리 디킨슨은 원예에 조예가 깊었고 식물 표본을 수집했으며, 정원은 그녀에게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감각의 창구였다. 투어 가이드는 “그녀는 정원에서 꽃을 따다 이웃에게 선물했고, 그것이 그녀의 사교 방식이었다”고 설명한다. 꽃 한 다발로 세상과 소통한 시인. 그 소박하고 단호한 방식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2층 방의 작은 책상 앞에서 걸음이 멈춘다. 저 작은 나무 판 위에서, 저것이었구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넓은 시들이 태어났다.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 세 번째·네 번째 장소: 애머스트 아카데미와 마운트 홀리요크 — 비스듬히 말하기의 뿌리
에밀리 디킨슨은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애머스트 아카데미(Amherst Academy)에서는 과학과 문학, 철학을 폭넓게 공부했다. 이곳에서 형성된 지적 호기심은 훗날 그녀의 시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많은 독자들은 디킨슨을 감성적인 시인으로 기억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작품은 놀라울 만큼 철학적이다. 신에 대한 질문, 죽음에 대한 질문, 영원에 대한 질문. 그 질문들은 이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애머스트에서 남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마운트 홀리요크(Mount Holyoke Female Seminary)가 나온다. 강한 종교적 분위기로 유명했던 이 학교에서 디킨슨은 당시 종교적 각성 운동에 끝내 동조하지 않았다. 신앙 고백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홀로 앉아 있었던 그녀. 그러나 그것이 신의 부정이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인은 평생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성경을 표지가 닳도록 읽으며 암송했고, 그 언어를 시적 뼈대로 삼았다. 편지에서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나의 소명은 원주요”(My business is Circumference). 또 다른 서한에서는 “성경은 중심에 관한 것이지 원주에 관한 것이 아니다”(The Bible dealt with the Centre, not with the Circumference)라고도 했다. 여기서 중심은 성경이 다루는 핵심 진리이며, 원주는 인간의 이성과 이해가 머무는 광활한 탐색의 영역이다. 시인의 문학 세계는 신에 대한 철저한 회의와 경외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그 닻은 항상 진리의 핵심에 깊이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에서 애머스트 아카데미와 마운트 홀리요크를 함께 돌아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비스듬히 말하기(Tell it slant)의 전략으로 이어진다.
“모든 진리를 말하되 비스듬히 말하시오 / 우회해서 말해야 진리가 전달된다오”
Tell all the Truth but tell it slant —
Success in Circuit lies (CP 1129)
직선으로 말하면 진리의 빛이 너무 강해 인간이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는 우회하고, 돌아가고, 비유로 감싼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녀는 통사 구조를 무시하고, 접속어를 생략하며, 대신 대시(—)를 빈번하게 삽입한다. 의미를 고정하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독자가 행과 행 사이의 침묵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채워 넣도록 유도한다.
이 전략이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시 중 하나가 「나 죽을 때 파리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었지」(“I heard a Fly buzz — when I died —”)다. 임종의 순간, 사람들은 신의 임재를 기다린다. 그런데 화자가 목격한 것은 파리 한 마리다. “푸르스름하고, 모호하고, 더듬대는 윙윙 소리”(Blue — uncertain stumbling Buzz). 이 한 마리 파리는 당대 기독교의 관습적 임종 의식을 조용히 뒤흔든다. 그러나 에밀리 디킨슨은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파리를 등장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비스듬히 말하기다.
그런가 하면 「누구는 주일을 지킨다고 교회에 가는데」(“Some keep the Sabbath going to Church —”)에서는 자신만의 예배 방식을 선언한다.
Some keep the Sabbath going to Church —
I keep it, staying at Home —
With a Bobolink for a Chorister —
And an Orchard, for a Dome —
누구는 주일을 지킨다고 교회에 가는데 /
나는 집에 머무르며 주일을 지키지 /
찰떡새가 성가대요 /
과수원이 교회의 둥근 천장 —
교회 대신 집, 성직자 대신 신, 성가대 대신 찰떡새(Bobolink), 교회 천장 대신 과수원의 나뭇가지 지붕. 그리고 마지막 행: “나중에 죽어서 천국을 가지 않고 / 지금부터 내내 가고 있는 중이야”(So instead of getting to Heaven, at last — / I’m going, all along). 제도적 종교를 거부하면서도, 그 거부 안에 오히려 더 깊은 신앙의 고백이 담겨 있다. 회의(doubt)와 신앙(faith)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 속에서 변증적으로 공존한다.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 다섯 번째 장소: West Cemetery — 가장 조용한 곳에 가장 큰 목소리가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의 마지막 장소는 그녀가 잠들어 있는 West Cemetery다. 의외로 소박하다. 거대한 기념비도 없다. 화려한 조형물도 없다. 그저 조용한 묘석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앞에 서면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생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 사후에 미국 시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시인. 오늘날 에밀리 디킨슨은 월트 휘트먼(Walt Whitman)과 함께 미국 시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작은 묘비 앞에서 그런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이 애머스트에서 단 한 발짝도 멀리 가지 않았지만, 그녀의 시는 지금 전 세계에서 읽힌다.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이란 결국 작가가 머문 공간으로 독자가 찾아오는 여정이다. 그녀의 경우, 그 여정의 방향이 뒤집혀 있다. 그녀는 오지 않았다. 우리가 간다. 그리고 그 작은 방 앞에 서면, 비로소 알게 된다. 가장 조용한 곳에 가장 큰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2003년 살리나스에서 스타인벡의 흔적을 따라 걸었을 때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장소와 작품이 서로를 설명해 준다는 사실이었다. 애머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을 통해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고 애머스트를 상상하는 것과, 애머스트를 본 뒤 그녀의 시를 다시 읽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작은 방, 좁은 창문, 조용한 정원, 붉게 물든 뉴잉글랜드의 가을. 그 풍경들은 그녀의 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주석이 된다.
뉴잉글랜드의 가을 애머스트는 특히 아름답다. 9월 말에서 10월 초, 단풍이 절정에 달할 때 The Homestead의 붉은 담쟁이와 주변 플라타너스가 만드는 색채는, 마치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편 같다. 강렬하고, 짧고, 오래 남는다.
만약 언젠가 미국 동부를 여행하게 된다면, 화려한 관광지보다 먼저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을 위해 애머스트를 찾아보길 권한다. 그곳에는 거대한 박물관도, 유명한 랜드마크도 없다. 대신 한 시인이 평생을 바쳐 질문했던 삶과 죽음, 신앙과 고독, 그리고 시의 세계가 남아 있다. 끝없이 외부와의 연결만을 갈구하며 내면이 고갈되어 가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시인이 남긴 고독의 가치와 내적 풍요로움은 영혼을 치유하는 깊은 성찰을 제공하는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이 될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을 마치며 Main Street의 서점에 들르는 것을 권한다. 서가 어딘가에 에밀리 디킨슨 시집이 꽂혀 있을 것이다. 그 책을 꺼내 「비스듬히 말하기」(Tell all the Truth but tell it slant)를 소리 내어 읽어보라. 그 순간, 당신은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의 진짜 의미를 온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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