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 캐리의 시카고 문학기행, 저녁 무렵 백화점 쇼윈도 유리창 앞에 서서 진열품과 자신의 반영을 함께 바라보는 젊은 여성

『시스터 캐리』로 걷는 시카고 문학기행, 스펙터클 도시가 욕망을 만드는 4가지 풍경

1889년 8월의 어느 오후, 위스콘신의 소도시를 떠난 열차가 시카고를 향해 달린다. 창가에 앉은 열여덟 살의 캐리 미버(Carrie Meeber)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도시의 건물이 아니라 도시의 빛이었다. 『시스터 캐리』(Sister Carrie)는 이렇게, 한 시골 처녀가 거대한 불빛의 자기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늦가을 저녁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에 전등이 하나둘 켜지면, 거대한 유리창 너머에는 최신 드레스와 모자가 가지런히 진열되고 거리의 사람들은 발걸음을 늦춘다. 누구도 쇼윈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잠시 그 앞에 멈춘다.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가 1900년에 발표한 이 소설을 들고 시카고의 옛 상업지구를 걷다 보면, 이 도시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을 유혹하고 삼키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시스터 캐리』의 무대인 시카고와 뉴욕을 네 개의 풍경으로 나누어 걸어 보려 한다.

시스터 캐리의 배경인 1889년 시카고 상업지구, 판유리 건물과 가스등이 켜진 거리 풍경

유리와 불빛으로 지은 무대, 시스터 캐리의 시카고

『시스터 캐리』의 시카고는 1871년 대화재 이후 완전히 새로 지어진 도시다. 잿더미 위에서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 건축가들은 철골과 판유리라는 신소재로 상업지구를 재건했고, 그 결과 1880년대의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당시 미국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던 투명한 거리가 되었다. 여기에 가스등과 초기 전기 조명의 등장은 밤의 어둠을 몰아내고 도시 전체를 불이 꺼지지 않는 환상적인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도시는 이때부터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설계되기 시작했다. 드라이저는 이 도시의 표면을 집요하게 기록한다.

The large plates of window glass, now so common, were then rapidly coming into use, and gave to the ground floor offices a distinguished and prosperous look.
지금은 흔해진 커다란 판유리가 당시에는 빠르게 보급되던 참이었고, 일층 사무실들에 기품 있고 번성하는 인상을 부여했다.

일자리를 찾아 시스터 캐리 속 이 거리를 헤매는 캐리에게 유리벽 너머의 세계는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짝이는 사무 집기, 일하는 점원들, 말쑥한 신사들. 그러나 소설을 자세히 읽으면 드라이저의 냉정한 시선이 드러난다. 그 투명함은 보는 것은 허락하되 들어가는 것은 거부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기도 했다. 도시 문화 연구자들이 지적해 왔듯, 유리와 조명이 만들어 낸 개방성의 이미지는 실은 빈곤과 성공 사이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전시하는 장치였다.『시스터 캐리』의 첫 번째 풍경은 그래서 무대 세트를 닮았다. 화려하게 밝혀져 있지만, 객석의 관객은 결코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없다.

드라이저 자신도 이 도시의 인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소설 밖의 글에서 대도시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자석에 비유했다.

To go to the city is the changeless desire of the mind.
도시로 가고자 하는 것은 마음의 변치 않는 욕망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불빛, 거대한 상점, 우뚝 솟은 건물과 저택을 보고 싶다는 욕망은 마음이 좀처럼 거스를 수 없는 힘이며, 그 자기력이 대도시의 인구를 끊임없이 불려 나간다는 것이다. 시스터 캐리의 첫 장에서 열차에 오른 캐리를 시카고까지 실어 나른 것은 기관차가 아니라 바로 이 자기장이었다. 도시는 기다리지 않는다. 도시는 끌어당긴다. 그리고 시스터 캐리는 그 인력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 한 인간의 기록이다.

시스터 캐리와 페어 백화점, 욕망이 진열되는 극장

두 번째 풍경은 실내에 있다. 캐리가 처음 들어선 페어 백화점(The Fair Department Store)은 19세기 말 미국 도시가 발명한 가장 극적인 공간이었다. 수평으로 길게 이어진 유리 진열장, 거울과 조명이 겹겹이 반사되는 매장.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더 나은 자아를 꿈꾸게 만드는 환상 플랜트였다. 드라이저는 캐리가 자개 단추가 달린 황갈색 재킷 앞에서 멈춰 서는 순간을 이렇게 포착한다.

How would she look in this, how charming that would make her!
이것을 입으면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얼마나 매력적으로 변할까!

시스터 캐리 속 페어 백화점을 연상시키는 19세기 말 미국 백화점의 화려한 유리 진열장 내부

주목할 것은 캐리가 재킷을 사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재킷을 입은 또 다른 자신을 욕망한다는 점이다. 쇼윈도는 상품보다 욕망을 전시했고, 백화점은 상품이 아니라 변신의 환상을 팔았다. 이 연극적 스펙터클은 백화점 바깥으로도 이어진다. 어느 봄날 캐리는 헤일 부인(Mrs. Hale)과 마차를 타고 노스사이드(North Side)의 저택가를 지난다. 갓 푸르러지기 시작한 넓은 잔디밭 너머, 램프 불빛이 어른거리는 부유한 실내가 창문 틈으로 언뜻언뜻 스쳐 간다. 의자 하나, 탁자 하나, 장식된 모퉁이 하나. 그 단편적인 이미지만으로 캐리의 상상은 완성된 행복의 그림을 그려 낸다.

She imagined that across these richly carved entrance-ways, where the globed and crystalled lamps shone upon paneled doors set with stained designed panes of glass, was neither care nor unsatisfied desire. She was perfectly certain that here was happiness.
그녀는 화려하게 조각된 출입구 너머, 구형의 수정 등불이 스테인드글라스 유리문 위로 은은하게 빛나는 그곳에는 어떠한 근심도, 채워지지 않은 욕망도 없을 것이라 상상했다. 그녀는 그곳에 행복이 있으리라 완전히 확신했다.

주목할 것은 캐리가 본 것이 의자와 탁자의 파편뿐이라는 사실이다. 부분만 보여주는 시선이 오히려 완전한 환상을 낳는다.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셰리스(Sherry’s)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신문의 사교계 기사로만 접하던 그 화려한 만찬장에 실제로 들어선 캐리는 부유하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하고 감탄할 뿐, 그 광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끝내 묻지 않는다. 시스터 캐리가 그린 유혹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겉모습이 곧 내면의 행복일 것이라는 거대한 착각에 있다. 필자가 30년 동안 강의실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학생들의 표정이 가장 생생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창가의 캐리, 신문 속의 허스트우드

세 번째 풍경은 창문이라는 프레임이다. 『시스터 캐리』에서 캐리는 끊임없이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흔들의자에 몸을 맡긴 채 램프 불빛이 켜진 거리를 바라보며, 그녀는 갈망하고 또 갈망한다(She longed and longed and longed). 창문은 그녀를 다른 세계 곁에 데려다 놓지만, 결코 그 안으로 들여보내지는 않는다. 창틀에 담긴 순간 거리의 일상은 한 편의 연극 장면으로 변한다.

흥미로운 것은 시스터 캐리에서 몰락해 가는 허스트우드(Hurstwood)에게도 똑같은 프레임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다만 그의 창문은 유리가 아니라 활자, 곧 신문이다. 뉴욕의 초라한 방에서 그는 신문 속 명사들의 화려한 일화를 소비하며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자신의 남루한 현실에서 도피한다. 그가 브루클린 전차 파업에 대체 기관사로 직접 뛰어들었을 때 소설은 결정적인 한 문장을 던진다.

He had read of these things, but the reality seemed something altogether new.
그는 이런 일들에 대해 읽은 적은 있었지만, 현실은 전혀 새로운 무엇처럼 보였다.

파업 노동자들의 차가운 증오와 거친 폭력은 신문이 전하던 흥미진진한 스펙터클과는 전혀 다른 날 것의 고통이었다. 그런데 그 끔찍한 현장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는 다시 신문 헤드라인을 흥미롭게 읽는다. 직접 겪는 삶의 진실보다 매체가 가공한 이미지를 더 진짜처럼 받아들이는 이 상호 소외(reciprocal alienation)의 상태, 읽어서 아는 세계와 몸으로 겪는 세계 사이의 아득한 간극이야말로 시스터 캐리가 그려 낸 근대 도시인의 초상이다. 두 사람 모두 도시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관람하고 있었던 셈이다.

100년이 지나도 우리는 쇼윈도 앞에 선다

시스터 캐리 후반부의 무대인 1900년경 뉴욕 브로드웨이의 밤, 전등 불빛과 그늘 속의 남자

마지막 풍경은 뉴욕이다. 여배우가 된 캐리의 이름이 브로드웨이(Broadway)의 전광에 내걸리는 동안, 허스트우드는 바로 그 거리의 그늘에서 무료 급식 줄에 선다. 드라이저는 5번가의 셰리스와 바워리(Bowery)의 싸구려 여인숙을 같은 도시의 앞면과 뒷면으로 배치했다. 조명이 비추는 곳과 비추지 않는 곳, 그 편집이 곧 도시의 이데올로기라는 통찰은 반세기 뒤 스펙터클 사회를 논한 유럽 사상가들의 주장을 놀랍도록 앞질러 있다. 소설의 결말에서 캐리는 그토록 갈망하던 부와 명예를 거머쥐지만, 최고급 호텔 방의 흔들의자에 앉아 여전히 정체 모를 허기를 느끼며 창밖을 바라본다. 성공의 정점에서조차 그녀는 갈망하는 관람자로 남는다.

필자는 이 풍경을 읽을 때마다 기러기 아빠로서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의 가족에게 가던 밤 비행을 떠올린다. 착륙 직전, 창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던 북미 대륙 도시의 불빛 격자. 그 찬란한 빛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저 불빛 하나하나 아래에 캐리의 갈망과 허스트우드의 어둠이 함께 있으리라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몬테레이의 캐너리 로우를 걸을 때 바다 내음과 통조림 공장의 거친 질감이 오감을 자극했다면, 30년 동안 활자로만 읽어 온 드라이저의 도시는 비행기 창문이라는 또 하나의 프레임 속에서 문득 실감으로 다가왔다. 문학 연구자는 작품을 읽지만, 문학기행자는 거리까지 읽는다.

그리고 그 거리는 지금 우리 곁에도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광고와 쇼핑몰 화면은 모두 현대의 쇼윈도다. 스마트폰이라는 더 정교해진 유리창을 통해 타인의 화려한 삶을 끊임없이 훔쳐보고 소비하는 오늘의 스펙터클 사회는, 드라이저가 경고했던 세기말의 징후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드라이저는 도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욕망을 디자인하는 도시를 묘사했던 것이다.

시카고를 여행한다면 마천루만 올려다보지 말기를 권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 오래된 백화점의 유리창을 바라보면 좋겠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유리 너머의 진열품을 동시에 바라보시기를. 그 유리창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있다. 『시스터 캐리』를 읽은 뒤의 시카고는 더 이상 같은 도시가 아니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그 도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부 링크 추천:

  1. “스타인벡과 함께 걸은 캐너리 로우” → 캐너리 로우(Cannery Row) 분석 포스트
  2.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발견한 것”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문학기행 포스트
  3. “에밀리 디킨슨의 앰허스트 창가” → 에밀리 디킨슨 문학기행 포스트
  4. “찰리와 함께한 미국 횡단의 길” → 찰리와 함께한 여행 포스트
  5. “집이란 무엇인가” → Life & Humanities 에세이 ‘집이란 무엇인가’
  6. “마크 트웨인의 미시시피강” → 마크 트웨인 문학기행 포스트

외부 링크 추천:

  1. 국제 시어도어 드라이저 학회(International Theodore Dreiser Society) 공식 페이지
  2. 시카고 건축 센터(Chicago Architecture Center) — 시카고학파 건축 자료
  3. 노턴 비평판 Sister Carrie (W. W. Norton) 소개 페이지
  4. 뉴베리 도서관(Newberry Library) 시카고 도시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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