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인가? — 여산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몸이 먼저 대답하는 3가지 감각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계신 노모와 형제들을 뵙고 다시 전주로 내려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매번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
어머니 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오른다. 강북구 수유동 골목을 빠져나오면 동부간선도로가 시작된다. 정체를 뚫고 청담대교를 건너 경부고속도로 진입로를 찾아 핸들을 꺾는다. 판교 분기점을 지나며 비로소 숨통이 트이고, 천안논산고속도로에 올라서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빌딩 숲이 사라지고 차창 밖이 조금씩 넓어진다. 그렇게 남쪽으로 200km 정도를 달리다 보면, 시야 끝에 무언가 걸린다.
여산 휴게소 표지판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핸들을 쥔 손의 힘이 빠진다. 어깨가 내려앉고, 숨이 한 박자 길어진다. 머리가 집이란 무엇인가를 묻기도 전에 몸이 먼저 대답해버리는 그 순간. 나는 20년 가까이 이 순간을 매달 경험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설명하지 못했다.

태어나고 자란 서울도 아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캐나다 런던도 아닌, 전주가 가까워지는 이 고속도로 위에서 왜 이런 안도감이 오는 걸까.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처럼 철학적 정의보다 몸의 반응으로 먼저 찾아왔다. 그리고 그 질문을 붙들고 앉아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 개의 공간을 찬찬히 되짚다 보면, 집이 하나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떤 집은 기억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집은 사랑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집은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다.
서울 — 기억이 있는 집, 그러나 이제 손님이 된 곳
집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본능적으로 기억이 먼저 향하는 첫 번째 공간은 서울이다. 어머니가 계시고, 형제들이 있고, 내 유년과 청년이 통째로 묻혀 있는 곳. 무엇보다 — 가족이 캐나다로 떠나기 전까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던 곳이다. 소란스럽고 따뜻했던 그 집이 진짜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지금 서울에 가면 묘하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은 없다. 재개발과 도시화라는 이름 아래 전부 달라졌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기억 속 풍경은 어디에도 없다. 가족도 떠났고, 공간도 사라졌다.
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떠나고 건물마저 바뀌면, 그 집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어머니 집 현관을 들어설 때는 분명히 집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동네를 한 바퀴 걷고 나면 나는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 된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어딘가 어색하다. 내 일상이 없고, 내 리듬이 없다. 어머니 집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 문득 — 나는 여기 손님이구나, 싶은 순간이 온다.
서울은 내가 자란 곳이다. 그러나 이제 서울은 기억 속에 있고, 지금의 나는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되어버렸다.
두 번째는 캐나다 런던이다. 아내와 딸, 그리고 크림색 토이 푸들 모카가 사는 곳. 방학마다 찾아가는 곳. 논리적으로는 이곳이 집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 매번 반쯤 손님 같은 느낌이 든다. 냉장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새로 확인해야 하고, 마트 가는 길에서 방향을 잠깐 생각하게 된다. 모카는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지만, 내 몸이 그 공간의 리듬을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런던은 아직 완전한 답이 되지 못한다.
전주 — 캠프였던 곳이 집이 된 이유
세 번째가 전주다. 2005년 교수로 임용되면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짐을 풀던 곳. 텅 빈 캠퍼스, 낯선 전라도 억양, 저녁을 어디서 먹어야 할지조차 몰랐던 첫 번째 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에는 전주가 집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 집이 될 수 없는 곳이었다. 월요일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에 내려와 원룸에 짐을 풀고, 목요일 오전 강의가 끝나면 다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전주는 그때 나에게 캠프였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 진짜 집은 서울에 있었다.
그런데 2008년, 아내와 아이들이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으로 이민을 가면서 방정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 올라가던 발걸음이 끊겼다. 어쩔 수 없이, 전주와 제대로 마주해야 했다.
그렇게 단골 국밥집이 생기고, 즐겨 걷는 산책로가 생기고, 이름을 아는 참치 횟집 사장님이 생겼다. 캠퍼스 어느 계단이 삐걱거리는지 발이 먼저 기억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전주의 공기가 낯설지 않았다.
그 캠프가 집이 된 것이다.

집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집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돌아오며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택이 아니라 시간이, 의지가 아니라 습관이 만들어내는 것. 서울은 내가 자란 곳이고, 전주는 내가 된 곳이다.
하이데거와 바슐라르가 집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집은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세계 안에 있음(Being-in-the-world)의 방식이라고. 지붕과 벽이 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온 시간과 관계와 습관이 집을 만든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말도 남겼다.
“Language is the house of Being.”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피식 웃음이 났다. 30년 넘게 영미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사람이 집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으니 —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집을 연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스타인벡의 문장 속에서, 학생들과 나누는 텍스트 속에서, 전주의 혼자 사는 방 책상 위에서. 평생 언어 속에 집을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스타인벡 살리나스 — 23년 전, 작가의 땅을 처음 밟던 날]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공간의 시학』(The Poetics of Space)에서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 다른 각도로 답했다. 집은 우리의 첫 번째 우주(our first universe)라고. 여기서 첫 번째 우주란 태어난 집이 아니다. 몸과 기억이 가장 깊이 스민 공간, 눈을 감아도 구석구석이 떠오르는 공간, 꿈속에서도 자연스럽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다. 냄새, 소리, 온도, 빛의 각도 — 그 모든 감각이 쌓여 하나의 우주가 된다. [→ Gaston Bachelard, The Poetics of Space]
그 기준으로 보면, 내 첫 번째 우주는 서울이 아니다. 전주다.
2005년의 어색함이 2010년의 익숙함이 되고, 2020년의 편안함이 되었다.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바슐라르의 답은 결국 이것이다. 몸이 기억하는 시간의 두께. 그리고 그 두께가 시작되는 경계선이 바로 여산 휴게소다. 그 표지판을 지나는 순간, 철학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여기서부터 내 세계다.
가족이 없는 곳이 집인 이유 — 그리고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잠정적 답
물론 아이러니하다는 걸 안다.
‘집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고 모카가 있는 런던이 답이어야 논리적으로 맞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집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은 논리보다 먼저 반응한다. 20년의 시간이 쌓인 전주 앞에서, 가족이 떠난 지 18년이 지났지만, 캐나다는 아직도 몸에 완전히 스미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집이 하나일 필요는 없다.

방학이 끝나고 캐나다에서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다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주로 내려올 때 — 이 감각을 기러기 아빠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안도감.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머리로 정리하기 전에, 몸이 먼저 내뱉는 그 감각.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함'(dwelling)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20년 가까이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캐나다는 사랑이 있는 집이다. 서울은 기억이 있는 집이다. 전주는 내 시간이 가장 두텁게 쌓인 집이다. 그리고 때로는 이 세 가지가 서로 다른 장소를 가리킨다. 그럴 때 우리는 평생 두 개, 혹은 세 개의 집 사이 어딘가를 떠돈다. 그것이 슬픈 일인지, 풍요로운 일인지는 —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답이 여산 휴게소 표지판 앞에서 매달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 “인생 2막 — 62세 교수가 디지털에 미친 진짜 이유” ]
늦은 밤, 전주의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스탠드 불빛이 책 위에 작게 내려앉고, 모니터에는 쓰다 만 문장이 남아 있다. 시차 -13시간인 캐나다 런던은 지금 아침이다. 모카는 아마 백야드 문 앞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아내는 커피를 끓이고 있을 것이다. 딸은 WestJet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전주의 밤 속에 혼자 앉아 있다.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다.
책상 위에는 스타인벡의 책이 펼쳐져 있고, 30년 가르치고 연구한 언어들이 이 방 안에 가득하다. 하이데거의 말대로라면,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쓰는 한 집 안에 있다.
집이란 무엇인가 — 나는 아직도 완전한 답을 모른다. 서울인지, 런던인지, 전주인지. 아마 평생 고르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여산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어깨가 내려가는 그 순간, 몸이 먼저 대답한다는 것을.
집이란 어쩌면 끝내 정의하는 장소가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아보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이 질문의 뿌리를 스타인벡 문학에서 찾고 싶다면 → 존 스타인벡 완전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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