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4,700km를 달려가 라면을 끓였을까, 여행이 남긴 5가지 진실

나무 데크 위에 버너가 놓여 있었다.
코펠 하나, 빨간 신라면 봉지, 한국에서 소중히 챙겨온 낡은 김치통, 나무젓가락 한 쌍. 사진만 보면 한국 어느 펜션의 점심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곳은 캐나다 동쪽 끝,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Prince Edward Island)였다. 온타리오 런던의 집에서 며칠을 달려온 여행의 끝에서, 나는 라면을 끓이려는 참이었다.
그 사진을 최근에 다시 꺼내 보았다. 햇살 비치는 데크, 검은 버너,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빨간 라면 봉지와 김치통. 나중에 따져보니 왕복 4,700킬로미터였다. 그 먼 여행의 끝에서 결국 라면을 끓이는 사람 — 그게 나였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내가 미처 몰랐던 다섯 가지 진실이 숨어 있었다.
4,700km, 우리가 함께 달린 길

출발은 가족과 함께였다. 차에 짐을 싣고, 강아지 모카를 뒷좌석에 태우고 동쪽으로 향했다. 토론토를 지나 퀘벡의 작은 에어비앤비에서 첫날 밤을 묵었다. 이튿날 퀘벡 구시가의 돌바닥 골목과 오래된 성벽 아래에서 또 하루를 보냈다. 짧은 밤이었지만 그 밤의 공기는 지금도 선명하다.
뉴브런즈윅의 멍크턴을 가로질러 마침내 컨페더레이션 브리지(Confederation Bridge)에 들어섰다. 바다 위로 13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는 회색빛 대서양이 끝없이 펼쳐졌다. 다리를 다 건너자 비로소 붉은 흙길이 나타났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였다.
돌아오는 길에도 같은 다리, 같은 고속도로, 같은 풍경을 지났다. 그런데 갈 때와 묘하게 달랐다. 차 안에는 이미 무언가가 조용히 쌓여 있었다.
PEI까지 달려간 이유 — 집 한 채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의 절반은 이 작은 섬에 있는 집 한 채 때문이었다. 초록색 박공지붕에 흰 벽, 루시 모드 몽고메리(L. M. Montgomery)가 1908년에 발표한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의 무대가 된 바로 그 집.
흔히 “작가의 집”이라 부르지만,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 몽고메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캐번디시에서 외조부모 손에 자랐는데, 이 농가는 그 근처 친척의 집이었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이 집과 둘레의 숲길을 드나들었고, 훗날 고아 소녀 앤이 매슈와 머릴라 남매에게 입양되어 살아가는 그린 게이블스의 모델로 그 풍경을 빌려 왔다. 현실의 한 농가에서 소설 속 집이 태어난 셈이다.
모카를 안고 그 잔디밭에 섰을 때, 나는 잠시 멈췄다. 처음 온 곳인데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독자들에게 빨간 머리 앤은 낯선 외국 소설이 아니다. 어린 시절 만화로, 번역서로 한 번쯤 만났던 친구 같은 이름이다. 그러니 이 집 앞에 선다는 것은 관광지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오래전 헤어진 친구의 고향을 찾아오는 일에 가깝다.
문학은 때때로 실제 경험보다 오래 남는다. 그날 나는 학자가 아니라 그냥 독자였다.
첫 번째 진실 — 라면 한 그릇이 품고 있던 것

PEI에는 좋은 음식이 많다. 랍스터 롤, 갓 튀긴 감자튀김, 푸틴, 신선한 해산물. 작은 푸드트럭 앞에서 메뉴판을 올려다보며 가족과 길게 줄을 섰던 기억도 있다. 여행자는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흘을 묵는 동안 하루가 끝나갈 때면 자꾸 라면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라면 국물이 생각났다. 뜨겁고 짭짤하고 익숙한 그 맛. 긴 운전 뒤 몸이 축 처질 때, 바닷바람을 맞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마음은 자꾸 한국 쪽으로 기울었다.
익숙한 음식은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기억이 담겨 있다. 집이 담겨 있고, 가족이 담겨 있고, 지나온 시간이 담겨 있다. 신라면 한 봉지는 한국에서의 삶 전체를 압축해 둔 작은 기억 장치였는지도 모른다. 소중히 챙겨온 낡은 김치통이 그 옆을 지키고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내가 무엇을 그리워하는 사람인지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이 첫 번째 진실이었다.
두 번째 진실 — 에머슨이 말한 “Trust Thyself”
집으로 돌아온 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에세이 「자기 신뢰」(“Self-Reliance”)를 다시 펼쳤다가 그 데크의 사진이 떠올랐다. 에머슨은 인간이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남을 흉내 내는 삶을 그는 위조품에 비유했고, 자기 내면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결한 상태라고 보았다.
“Trust thyself.” 너 자신을 믿어라.
젊을 때 이 문장은 그저 멋진 경구처럼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지난날 나는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려 했다. 남들이 추천하는 식당을 찾고, 남들이 찍는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남들이 말하는 여행을 좇았다. 여행자라면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그 무언의 압박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다 조금씩 깨닫는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현지 음식을 마음껏 즐기는 여행자도 있고, 낯선 땅에서 익숙한 한 그릇을 찾는 여행자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옳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이다.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데크 위에서 라면을 끓이던 그 소박한 장면은, 내가 드디어 타인의 기준에서 조금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작은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것이 두 번째 진실이었다.
세 번째 진실 — 여행 사진은 풍경이 아니라 시간을 찍는다

오래된 여행 사진을 다시 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그때는 풍경만 보였는데, 지금은 시간이 보인다.
그린 게이블스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건물보다 그 옆에 함께 서 있던 가족이 먼저 떠오른다. 어색하게 포즈를 취한 그 시절의 내 얼굴, 환하게 웃던 아내, 몰라보게 자라버린 아이들의 앳된 눈빛. 사진 속 우리는 여전히 그 여름에 멈춰 있는데, 사진을 들여다보는 나만 홀로 나이를 먹어 있다.
차 안에서 찍은 사진도 그렇다. 앞좌석과 뒷좌석에 가족이 나뉘어 앉아 있고, 짐은 차 안 가득 실려 있다. 그 사이에 모카가 있다. 누군가는 창밖을 보고, 누군가는 선글라스를 쓰고 말없이 앉아 있다. 특별한 포즈도 없고, 여행 잡지에 실릴 만한 구도도 아니다. 그런데 그 사진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차 안의 공기, 장거리 운전의 피곤함, 휴게소 커피 냄새, 서로 말이 줄어드는 오후의 침묵까지 희미하게 되살아난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에서, 모든 사진이 결국 시간의 흐름과 사라짐을 증언한다고 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순간을 박제하는 것이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건 멋진 명소 사진이 아니다. 바닷가 풀밭에 쪼그려 앉아 모카와 단둘이 있던 한낮, 멀리 풍력 발전기가 천천히 돌던 그 평범한 한 컷이 자꾸 눈에 밟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장면인데, 지금 보면 그 무심한 평화가 사무친다. 정작 그날의 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지 못했다. 좋은 시간은 늘 지나고 나서야 좋은 시간이었음을 안다.
예전에는 관광지였던 곳이 이제는 기억의 장소가 된다. 인증사진이었던 것이 인생의 한 장면이 된다. 그것이 세 번째 진실이었다.
네 번째 진실 — 여행이 묻는 것
사람들은 여행에서 무엇을 가져올까. 기념품일까, 사진일까, 추억일까. 나는 점점 다른 답을 하게 된다. 여행이 남기는 가장 오래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작은 발견이라고.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그리워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끝내 놓지 못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들은 일상에서는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바쁘게 살다 보면 자신을 들여다볼 틈이 없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 앞에 서고, 오래전 읽은 소설의 집 앞 잔디밭에 멍하니 서 있다 보면,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질문들이 불쑥 찾아온다. 아무런 답도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의 소음이 잠시 멎은 자리에서, 오래 미뤄두었던 자기 자신과 조용히 마주하기 위해. 이 질문에 답하게 하는 것 — 그것이 네 번째 진실이었다.
다섯 번째 진실 — 짐처럼 따라오는 것
많은 이들이 멀리 떠나면 자신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하지만 대서양 끝자락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국물을 찾던 나처럼, 사람은 공간을 옮긴다고 본질까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의 소심함, 나의 외로움, 끝내 놓지 못하는 과거의 집착은 수하물처럼 늘 나를 따라온다. 오히려 낯선 곳에 던져졌을 때 우리는 평소 마주하기 두려웠던 진짜 자신의 민낯과 더 선명히 대면한다. 그것이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진실이었다.
PEI의 어느 여름날, 데크 위에서 끓고 있던 신라면 한 냄비는 그 모든 질문을 조용히 던지고 있었다. 어쩌면 여행의 진짜 목적지는 언제나 낯선 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4,700km를 달려 라면을 끓이러 간 게 아니었다. 라면을 끓이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러 갔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여행이란, 그 질문을 조금 덜 무섭게 묻기 위해 우리가 먼 길을 돌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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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Anne of Green Gables Heritage Place (Parks Canada 공식)
Tourism PEI 공식 사이트
Ralph Waldo Emerson Society (emersonsocie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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