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어디에 남는가 — 수목장, 나무 아래로 돌아간 누나의 7주기
흐린 하늘 아래, 접이식 의자가 반원을 그렸다.
천주교 신부인 동생이 작은 나무 상 위에 성작을 올리고 기도문을 폈다. 늙으신 어머니는 지팡이를 옆에 세운 채 그 앞에 앉으셨고, 우리 형제들은 말없이 간이 제대를 바라보았다. 자동차 소리도 새소리도 잠시 물러난 그 야외 미사의 자리에서, 지난 7월 5일 우리는 큰누나의 7주기를 지냈다. 누나가 잠든 곳은 봉분도 비석도 없는 수목장, 산 아래가 넓게 보이는 나무 한 그루 아래였다.
누나는 수목장을 원했다. 요즘은 수목장을 택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평생을 수녀로 살았던 사람이, 죽어서도 자신을 크게 남기려 하지 않았다. 높은 비석도, 넓은 묘도, 이름을 오래 붙잡아 둘 단단한 돌집도 원하지 않았다. 나무 아래 흙이면 된다고 했다. 췌장암이었다. 병이 몸을 야위게 하는 동안에도 누나는 좀처럼 자기 삶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통증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던 사람의, 마지막까지 소박한 소원이 수목장이었다.

그날 나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죽은 사람을 만나러 산에 올랐는데, 눈앞에는 죽음보다 생명이 훨씬 많았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흔들리고, 이름 모를 들꽃이 흐린 하늘 아래 온 땅을 덮고 있었다. 여름 숲은 짙었고, 바위 틈으로도 초록이 비어져 나왔다. 누나는 어디에 있는가. 죽은 사람은 대체 어디에 남는가. 나는 그 질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누나는 수목장을 원했다
수목장(樹木葬)은 화장한 유골을 나무 아래 묻는 장례다. 봉분을 쌓지 않고, 비석을 세우지 않는다. 몇 해가 지나면 그 자리가 어디였는지조차 흐려진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방식이다. 그래서 수목장은 흔히 가장 겸손한 장례라 불린다. 몸은 사라지고, 목소리도 사라지고, 자주 쓰던 물건도 언젠가는 없어지며, 사진 속 얼굴조차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낯설어진다.
그런데 여기 이상한 역설이 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 오히려 가장 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누나는 자신의 가정을 꾸리지 않았고, 자식을 두지 않았으며, 재산도 이름도 붙들지 않았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자기 것’을 남기는 삶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그 누나가 세상을 떠난 지 일곱 해가 지난 오늘, 흩어져 살던 형제들을 다시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정작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말이다.
그러니 수목장이라는 선택은 단순한 장례 형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나의 삶 전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상징처럼 읽혔다. 평생 자신을 비워 하느님께 바친 사람이, 마지막 몸까지 가장 낮은 흙에게 돌려주었다. 세상 너머를 평생 손끝으로 가리키던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은 조용히 땅으로 내려놓은 것이다. 나는 그 역설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가장 적게 가지려 한 사람이 가장 깊이 남는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누나가 평생 몸으로 설교해 온 단 하나의 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흙에 맡긴다 — 휘트먼이 먼저 살아 낸 수목장
수목장 자리에 서면 나는 한 시인을 떠올린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이다. 그는 『풀잎』(Leaves of Grass)에서 한 아이의 질문을 받는다. “풀이 무엇인가요?” 시인은 끝내 답하지 못하고, 다만 그것이 무덤 위에 돋아난, 깎지 않은 머리카락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죽은 이의 몸에서 자라난 풀. 그렇게 죽음과 생명을 한 뿌리로 묶어 놓고,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The smallest sprout shows there is really no death.”
(가장 작은 새싹 하나가 보여준다, 죽음이란 실은 없다는 것을.)
미국 문학에서 죽음을 이보다 다정하게 뒤집은 문장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의 마지막에서 휘트먼은 아예 자기 몸의 처분을 이렇게 유언한다.
“I bequeath myself to the dirt to grow from the grass I love.”
(나는 나 자신을 흙에 맡긴다, 내가 사랑하는 풀에서 다시 자라기 위해.)
나를 다시 찾거든 그대 신발 밑창 아래를 보라고, 그는 덧붙였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해도 낙심하지 말라고, 한곳에 머물지 않고 어딘가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수목장은 이 시를 은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살아 낸 장례다. 휘트먼을 읽고 나면, 수목장이 왜 슬프기만 한 장례가 아닌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누나는 이제 언덕의 풀 속에 여름 숲의 짙은 초록 속에 있다. 휘트먼이 시로 노래한 죽음을 누나는 자신의 몸으로 완성했다.
강단에서 이 구절을 수십 번도 더 가르쳤다. 학생들에게 미국 초월주의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설명했고, 자연으로의 귀환이라는 관념을 칠판에 적었다. 그러나 그날 그 언덕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문장을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읽었다. 강의실의 개념이 흙과 풀의 실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문학은 그렇게, 가장 오래 준비해 둔 위로를 가장 필요한 날에 꺼내 준다. 수목장 앞에서 나는 그 위로를 처음으로 몸으로 받았다.

끝까지 견디는 이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 신부인 동생이 봉독한 복음이 있었다. 그날은 마침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대축일이었다. 동생이 낮고 낭낭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 것은, 박해를 예고하는 마태오 복음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2)
“But whoever endures to the end will be saved.”
나는 이 한 문장 앞에서 오래 멈췄다. 순교자의 축일에 봉독되는 이 복음이, 그날따라 누나의 생애 위로 정확히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누나는 순교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을 봉헌한 수녀로 살아 낸다는 것 역시, 매일 조금씩 자신을 내어놓는 긴 견딤이 아니었을까. 화려한 순간도, 세상의 박수도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의 씨앗을 뿌리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일. 그리고 마지막에는 췌장암이라는 모진 고통까지 담담히 견뎌 낸 사람. ‘끝까지 견딤’이라는 말이 누나만큼 어울리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견딤은 내 블로그가 오래 붙들어 온 문장과도 겹친다. 문학이 뿌리요, 언어가 열매다. 뿌리는 땅속 어두운 곳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견딤의 시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잎을 밀어 올린다. 누나의 삶도 그러했다. 보이지 않는 뿌리로 오래 견뎌, 지금 우리 위에 초록의 잎으로 서 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평생을 견딘 누나를 생각하면, 미국의 또 다른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유명한 시가 겹친다.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 He kindly stopped for me(내가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었기에, 죽음이 친절히 나를 위해 멈추었네).” 디킨슨의 죽음은 낫을 든 공포가 아니라 마차를 세우고 기다리는 정중한 신사다. 그 마차는 서두르지 않고 영원을 향해 나아간다. 통증마저 담담히 받아들이던 누나의 마지막이 꼭 그러했다. 디킨슨은 또 이렇게 못 박았다. “This World is not Conclusion(이 세상은 결론이 아니다).” 순교성인 김대건 신부님이 죽음 너머를 믿었듯, 미국 문학에서도 죽음은 이렇듯 자주, 끝이 아니라 문(門)이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아는가
휘트먼과 디킨슨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보여 주었다면, 또 한 사람은 반대편에서 우리를 흔든다. 손턴 와일더(Thornton Wilder)의 희곡 『우리 읍내』(Our Town)다. 3막에서 죽은 에밀리는 잠시 살아 있던 어느 평범한 하루로 돌아간다. 특별할 것 없는 생일 아침, 식탁이 차려지고 가족이 바쁘게 오간다. 그러나 이미 죽음을 아는 에밀리는 그 평범한 하루를 끝내 견디지 못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눈부신 순간 속에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이렇게 묻는다.
“Do any human beings ever realize life while they live it?”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정말 삶을 깨닫기는 할까?)
이 질문이 그날의 나를 오래 붙들었다. 우리는 7주기 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겉으로 보면 그저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는 가족 모임이었다. 하지만 와일더의 질문을 통과시키면 그 평범함이 통째로 달라진다. 그 흔한 하루를, 어쩌면 죽은 누나가 우리에게 다시 열어 준 것이다. 살아 있는 우리는 늘 그렇듯 바쁘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어머니의 흰머리가 또 늘고 주름이 더 깊게 팼다는 것을 무심히 넘겼다. 에밀리라면 그 무심함 앞에서 울었을 것이다.
산자락에는 손글씨로 가득한 유리 추모의 벽이 서 있었다. 떠난 이들에게 남긴 수많은 문장들. 나는 그 앞에 서서 낯모르는 이들의 글씨를 오래 읽었다. 죽은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실은 산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잘 지내라고 적으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놓치며 살아왔는지 깨닫는 듯했다. 와일더가 무대에서 던진 질문이, 그 유리벽 위에 수백 개의 손글씨로 흩어져 있었다.

부재가 우리를 다시 모았다
미사가 끝나고 우리는 산을 내려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구리 연통이 늘어선 고깃집에서 어머니와 형제들이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잔을 채우고,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슬픔의 자리에서 어느새 웃음이 났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반찬을 권하고, 잔을 채우고, 누구 얼굴이 좋아졌네 나빠졌네 하는 시시한 말들. 그런데 그 시시함이 그날따라 오래 마음에 남았다.

스타인벡을 평생 읽어 온 나로서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서 어머니 조드가 남긴 한마디가 그 저녁 밥상에 겹쳤다. “우리는 살아가는 사람들”(we’re the people that live). 조드 일가는 할아버지를 길가에 묻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개별의 죽음은 전체 생명의 정지가 아니라 그 안으로의 귀환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문학에서도, 우리 가족의 저녁 식탁에서도, 끝이 아니라 이어짐이었다. 먼저 떠난 이는 자연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남겨진 이들은 그 온기를 받아 삶을 잇는다.
여기서 나는 다시 그 역설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차지하지 않으려 했던 누나가, 가장 오래 우리를 붙든 사람이 되었다. 봉분도 비석도 세우지 않은 수목장이라는 조용한 선택이, 실은 가장 크게 우리를 불러 모으는 방식이었다. 수목장은 아무것도 세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사람을 세운다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남고, 사라짐으로써 이어진다. 이 문장은 누나가 평생 살아 낸 신앙의 언어이자, 휘트먼이 시로 적은 말이며, 끝까지 견디는 이가 구원을 받는다던 그날 복음의 뜻이기도 하다.
일곱 해가 지났지만 누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날의 내게는 그랬다. 누나는 나무 아래 있었고, 풀 사이에 있었고, 바람 속에 있었고, 오랜만에 모인 가족의 얼굴 사이에 있었다. 미사를 마친 뒤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그 평범하고 눈부신 시간 속에도 있었다. 휘트먼은 자신을 흙에 맡기겠다고 썼다. 나는 이제야 그 문장을 조금 알 것 같다. 죽음은 한 사람이 완전히 없어지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한 몸 안에만 머물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나는 수목장을 원했다. 그리고 일곱 해가 지난 오늘, 나는 생각한다. 누나는 자신이 원했던 방식 그대로, 아주 조용히, 세상 속으로 돌아갔다고. 죽은 사람은 어디에 남는가. 이제 나는 조금 안다.
사랑한 사람은, 사랑한 사람들 안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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