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의『대지』는 어디서 태어났을까, 두 집과 안후이성을 잇는 800킬로미터
펄 벅 대지를 쓴 펄 벅은 1938년 미국 최초의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단순히 미국 작가라고만 말하면 중요한 절반을 놓치게 됩니다. 펄 벅의 문학은 미국과 중국, 두 대륙 사이에서 태어났고, 1931년 출간된 『대지』(The Good Earth)는 바로 그 경계에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정확히는 1938년 노벨문학상이 『대지』 한 편이 아니라 중국 농민의 삶을 담아낸 작품 세계 전반에 주어진 것이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대지』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펄 벅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장소가 어떻게 문학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펄 벅 대지의 작가가 태어난 곳, 웨스트버지니아 생가
펄 벅 대지를 쓴 손이 처음 눈을 뜬 곳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 애팔래치아 산자락, 웨스트버지니아의 작은 마을 힐스보로(Hillsboro)였다. 힐스보로의 생가는 19세기 후반 네덜란드 이민자 가문 스털팅(Stulting) 일가가 손수 지은 집이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코넬리우스 스털팅은 고향 네덜란드의 집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위해 이 집을 지었지만, 정작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딸 캐럴라인, 곧 펄 벅의 어머니 캐리(Carie)가 이 집에서 자랐다.
캐리와 남편 압살롬 사이덴스트리커는 장로교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되어 있었다. 위생이 열악했던 그 시절, 부부는 중국에서 첫 세 자녀를 연이어 영아기에 잃었다. 네 번째 아이만큼은 안전하게 낳고자 캐리는 만삭의 몸으로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왔고, 1892년 그 집에서 펄 벅이 태어났다. 지금도 그 집에는 그 시절 가구와 풍금, 가족이 쓰던 살림살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인근에는 사이덴스트리커 가문이 살던 통나무집과 100여 점의 농기구를 보관한 헛간도 함께 남아 있다. 1970년 미국 국가사적지로 지정되었다.

펄 벅 대지가 빚어진 진짜 고향, 안후이성 난쑤저우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펄 벅은 다시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떠났다. 펄 벅은 중국 장쑤성(Jiangsu)과 안후이성(Anhui) 일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선교사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성장한 그녀는 농민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결혼한 뒤 정착한 곳이 바로 안후이성 난쑤저우였다. 펄 벅 대지가 잉태된 진짜 고향은 바로 이곳, 정착한 곳이 바로 안후이성 난쑤저우(Nanxuzhou)였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It was Wang Lung’s marriage day.
그날은 왕룽의 결혼식 날이었다.
이 문장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이 『대지』의 힘이다.
왕룽의 집을 구성하는 흙벽의 질감은 만지면 풀풀 부서지는 건조함을 품고 있다.
The kitchen was made of earthen bricks : the house was, great squares of earth dug from their own fields, and thatch with straw from their own wheat.
부엌은 흙벽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집은 그들 자신의 논밭에서 파낸 거대한 흙덩이로 지어졌고, 그들 자신의 밀에서 나온 짚으로 지붕을 이은 것이었다.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과 물을 아끼기 위해 조심스럽게 물을 푸는 왕룽의 손길은, 이들의 삶이 흙과 물이라는 물질적 기초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음을 보여준다. 집을 짓는 흙과 끼니를 짓는 흙이 결국 같은 땅에서 나왔다는 사실, 그것이 이 소설 전체를 떠받치는 은유다.
왕룽과 오란이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르는 토지신당 역시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Together this man and this woman stood before the gods of their fields. The woman watched the ends of the incense redden and turn grey.
이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들판을 지켜주는 신들 앞에 함께 섰다. 여자는 향의 끝부분이 붉어지다가 회색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깨 높이밖에 되지 않는 작은 흙벽돌 신당, 비바람에 형체만 겨우 남은 진흙 신상이지만 왕룽 부부에게는 그것이 곧 세상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대지』를 읽으면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내부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땅을 팔기 시작하면, 그 가문은 끝이다
많은 독자가 펄 벅 대지를 가족소설이나 성공담으로 읽는다. 하지만 펄 벅의 핵심 주제는 인간과 땅의 관계다. 왕룽은 가난한 농부에서 부자가 된다. 그러나 부자가 될수록 땅에서 멀어진다. 흙을 일구던 손이 장부를 만지는 손으로 바뀌는 순간, 그는 조상이 지켜온 무언가를 조금씩 잃어간다.
그리고 소설 말미에 이르면 가장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It is the end of a family, when they begin to sell the land.
땅을 팔기 시작하면 그 가문은 끝이다.
이 장면은 단순히 재산 이야기가 아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전통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경고다.
흥미롭게도 이 주제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도 연결된다. 스타인벡이 미국 오클라호마 농민을 통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면, 펄 벅은 중국 농민을 통해 이를 먼저 보여주었다. 같은 시대, 같은 위기를 서로 다른 대륙에서 각자의 언어로 증언한 셈이다. 30년 동안 미국문학을 강의하며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펄 벅은 중국을 쓴 미국 작가가 아니라, 인간을 쓴 작가다.
1934년, 평생 머문 집 — 그린힐스 농장
웨스트버지니아의 생가와 달리, 펜실베이니아 벅스 카운티의 그린힐스 농장(Green Hills Farm)은 그가 의식을 갖고 선택한 집이었다. 1932년 펄 벅 대지로 퓰리처상을 받은 직후, 펄 벅은 1934년 이 1825년산 석조 농가를 4,100달러에 사들였다. 그린힐스 농장에서 보낸 시간은 정확히 40년, 그의 생애 후반부 전체였다. 이곳에서 그는 펄 벅 대지를 비롯해 100여 권의 책을 쓰고, 여러 자녀를 입양해 길렀으며, 미국 최초의 국제 인종 간 입양 기관인 웰컴 하우스를 설립해 인도주의 활동에 힘을 쏟았다. 193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것도 이 돌집에 머물던 시절의 일이다.

묘비에 새긴 이름, 다시 읽는 재번역
1973년 3월, 펄 벅 대지를 쓴 작가는 여든의 나이로 그린힐스 농장에서 눈을 감았다. 본인의 뜻에 따라 그 농장 부지에 묻혔는데, 묘비에는 영어 이름 대신 그의 중국 이름인 사이전주(賽珍珠)를 한자로만 새겼다고 한다. 평생 영어로 글을 쓰고 미국 시민으로 살았던 사람이 마지막 자리에는 중국어 이름만 남긴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재번역 이야기다. 펄 벅 대지의 한국어판은 1957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19종이나 새로 번역되었다. 한글 표기법이 바뀔 때마다, 시대의 말투가 달라질 때마다 번역가들은 같은 소설을 다시 붙잡고 씨름해야 했다.
재미있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1957년판은 영어 단어 pale을 소리 나는 대로 히고라고 적었는데, 2010년판에 와서는 희고로 바뀌었다. 같은 번역가가 1978년에는 왕 룽이라고 띄어 쓰던 이름을, 2010년 펄 벅 대지의 재번역에서는 왕룽으로 붙여 쓰기도 했다.
방언도 시대를 따라 흘러갔다. 부엌칼을 가리키던 정지칼은 식칼로, 벌써라는 뜻의 하마는 벌써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여성을 낮잡아 부르던 딸년이라는 표현은 세월이 지나며 계집애, 딸아이, 딸애로 점점 다듬어졌는데, 이건 단순한 어휘 변화가 아니라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심지어 글을 쓰는 방향마저 바뀌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세로쓰기가 가로쓰기로 넘어갔고, 일본식 판형이던 책 크기도 국제 표준에 맞춰졌다. 하나의 소설이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옷을 몇 번이고 갈아입은 셈이다.
방언도 시대를 따라 흘러갔다. 부엌칼을 가리키던 정지칼은 식칼로, 벌써라는 뜻의 하마는 벌써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여성을 낮잡아 부르던 딸년이라는 표현은 세월이 지나며 계집애, 딸아이, 딸애로 점점 다듬어졌는데, 이건 단순한 어휘 변화가 아니라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심지어 글을 쓰는 방향마저 바뀌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세로쓰기가 가로쓰기로 넘어갔고, 일본식 판형이던 책 크기도 국제 표준에 맞춰졌다. 하나의 소설이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옷을 몇 번이고 갈아입은 셈이다.
흥미롭게도 펄 벅 자신의 생애도 그와 닮은 궤적을 그린다. 웨스트버지니아에서 미국인으로 태어나, 중국에서 중국어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다시 펜실베이니아의 돌집에서 영어로 그 경험을 옮겨 적은 사람. 그의 삶 자체가 두 언어, 두 정체성 사이를 오가는 한 편의 끊임없는 재번역이었던 셈이다.

펄 벅의 길을 걷는 독자에게
펄 벅 대지 문학기행은 단순히 작가의 생가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과 중국, 동양과 서양, 그리고 인간과 땅 사이를 걷는 여행이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생가에서 그린힐스 농장까지는 차로 여덟아홉 시간, 거리로는 800킬로미터 남짓이다. 기러기 아빠로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사는 처지에서, 이 거리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면, 두 집 모두 아직 두 발로 걸어본 적은 없다. 사진과 자료로만 그려본 풍경이다. 그러나 언젠가 미국 동부를 지날 일이 있다면, 그 800킬로미터의 길을 직접 걸어보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누군가 먼저 그 길을 걷는다면, 두 집 사이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꼭 전해 듣고 싶다.
만약 언젠가 펜실베이니아의 조용한 농촌길을 걷게 된다면, 『대지』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기를 권한다. 왕룽이 손에 흙을 쥐고 있었던 그 순간처럼. 좋은 문학은 결국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펄 벅 대지를 다시 펼쳐 읽고 싶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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