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만 알던 영어, 캐나다에서 다시 배운 3가지
2008년 7월,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에 내렸던 밤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시간은 저녁 8시쯤, 입국장 밖은 이미 어둑했다. 영주권 서류 자체는 한국에서 이미 다 준비해 온 뒤였지만, 정작 이민국 창구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캐리어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갈 만큼 긴 대기였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스무 해 가까이 강단에서 영어를 가르쳐 온 이력이 있다는 은근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니 이 낯선 나라에서의 언어 생활쯤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은행 창구에서, 이웃과 잡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튀어나온 것은 내가 알던 영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머리로만 알던 영어였을 뿐, 삶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영어는 아니었다. 학위복을 입고 사진을 찍던 그 여름으로부터 겨우 4년, 나는 머리로만 알던 영어를 뒤로하고 다시 처음 영어를 배우는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한 번, 훨씬 이전에 비슷한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2003년, 산호세 주립대학교 스타인벡 연구센터의 방문학자로 살리나스에 머물던 시절이었다. 그곳은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의 배경이 된 캘리포니아 농업지대, 스타인벡이 나고 자란 바로 그 마을이었다. 논문으로만 읽던 지명들이 실제 도로 표지판으로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런데 정작 그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센터의 사서와 짧은 잡담을 나누다가도, 지역 농장 노동자 후손들과 인터뷰를 하다가도, 나는 자꾸 한 박자씩 늦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텍스트 속 오키(Okie) 방언은 훤히 꿰고 있었지만, 정작 살리나스 마트 직원이 던지는 캘리포니아식 캐주얼한 영어 앞에서는 매번 멈칫거렸다. 그때는 그것을 그저 낯선 지역 억양 탓으로 돌리고 넘어갔다. 살리나스의 여름은 짧고 뜨거웠고, 나는 낮에는 도서관에서 스타인벡의 육필 원고 사본을 뒤적이다가 저녁이면 숙소 근처 식당에서 종업원의 빠른 주문 확인 앞에 매번 한 박자씩 늦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그 정도의 어색함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캐나다 이민국 창구에 서고 나서야, 그 멈칫거림이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언어 구조 자체의 문제였다는 것을, 다시 말해 머리로만 알던 영어의 근본적인 한계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학위와 삶 사이, 머리로만 알던 영어의 정체

대학원 시절 읽은 영어 문장은 대체로 끝까지 기다려주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시 읽으면 됐다. 사전을 펼칠 수도 있었고, 문장 구조를 나누어 살펴볼 수도 있었다. 논문 심사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이 던져지면 잠시 숨을 고르고, 머릿속으로 문장을 조립한 뒤에야 입을 열어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머리로만 알던 영어의 세계 안에서 완벽하게 안전했던 셈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영어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은행 직원은 이미 다음 설명으로 넘어가 있었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내가 머릿속으로 문장을 번역하는 동안 두세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자동차 정비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부품 이름이 연달아 나왔고, 슈퍼마켓 계산원은 물건을 봉투에 담으며 짧은 농담을 건넸다. 나는 문법적으로 틀린 말을 들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운 말을 듣고 있었다. 문제는 머리로만 알던 영어로는 그 자연스러움의 속도를 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머리로만 알던 영어는 정확한 문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의 속도, 표정, 침묵, 농담, 상대방과의 거리까지 모두 언어의 일부였다. 문법책은 그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논문은 각주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삶은 각주를 달아주지 않았다.
에이미 탄이 말한 또 다른 영어
이 무렵 다시 꺼내 읽은 글이 에이미 탄(Amy Tan)의 산문 「Mother Tongue」이었다. 머리로만 알던 영어와 삶으로 배운 영어의 차이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짚어낸 글을 나는 알지 못한다. 『조이 럭 클럽』(The Joy Luck Club)의 저자로 잘 알려진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와 쓰는 영어를 오랫동안 broken English라 불러왔다고 고백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남편과 지낸 세월 동안, 원래는 어머니와만 쓰던 그 소박한 화법이 어느새 부부 사이의 친밀한 언어로 자리 잡았다는 대목이다. 표준 문법을 벗어난 그 말투가 오히려 두 사람만의 은밀한 신호가 되었다는 것이다. 언어의 격식이 낮아질수록 관계의 거리는 오히려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대목에서 처음 분명하게 깨달았다.
에이미 탄은 자신이 얼마나 여러 겹의 영어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녹화한 어머니와의 대화 한 토막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보여준다. 상하이의 옛 정치 건달 두육손과 자기 집안의 인연을 설명하는 어머니의 말투는 시제도 어순도 표준 영어와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그 말을 옮겨 적은 지면 앞에서 에이미 탄은 오히려 자기 어머니의 언어가 자신에게는 더없이 선명하고 자연스러운 모국어라고 고백한다. 같은 대화를 듣고도 어떤 친구는 절반 정도만 알아들었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만은 그 말이 완벽하게 투명했다.
그녀가 이 사실을 뼈아프게 확인한 것은 두 번의 전화 사건을 통해서였다. 열다섯 살 무렵, 어머니는 딸에게 뉴욕의 증권 중개인에게 대신 전화를 걸게 했다. 어머니가 뒤에서 화난 목소리로 상황을 일러주면, 딸은 그것을 정제된 문장으로 옮겨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어설픈 흉내였지만 그 통화는 결국 성사되었고, 며칠 뒤 뉴욕의 그 중개인 앞에서 화를 낸 것은 딸이 아니라 서툰 영어의 진짜 어머니 본인이었다.
훗날 어머니가 뇌종양 검사 결과를 두고 병원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부딪혔을 때도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되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또박또박,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영어로 항의해도 병원은 사과 한마디 없이 서류를 잃어버렸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딸이 전화를 걸어 매끄러운 문장으로 같은 요구를 반복하자, 곧바로 사과와 재검사 약속이 돌아왔다. 같은 요구, 같은 절박함이었는데 오직 억양과 문법의 정교함 하나로 상대방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에이미 탄은 이 경험이 자신의 어린 시절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고도 말한다. 그녀는 수학과 과학에서는 상위권 성적을 받았지만 영어 시험에서는 유독 애매한 점수를 받곤 했다. 정답이 하나뿐인 수학과 달리, 영어 시험의 빈칸 채우기 문제들은 언제나 가장 무난하고 밋밋한 답만을 정답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다채로운 화법 속에서 자란 그녀에게는, 그 밋밋함이야말로 가장 부자연스러운 언어였다. 그녀는 훗날 작가가 되고 나서도 한동안 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초기 소설 원고에는 스스로도 낯 뜨겁다고 고백할 만큼 현학적인 문장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것 역시 머리로만 알던 영어가 남긴 습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녀는 어느 순간 결심한다. 자신이 쓰는 모든 문장을 어머니가 읽는다고 상상하며 쓰기로. 그렇게 완성된 소설을 어머니가 다 읽고 건넨 평가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짧은 한마디였다. “So easy to read.” 나는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문법으로는 결코 채점할 수 없는 언어의 진짜 자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에이미 탄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부서진 영어의 화자로 취급받았던 것처럼, 나 역시 문법과 격식을 언어의 유일한 자격증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그해 여름, 파일 넘버를 손에 쥐고 런던의 골목을 걷던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자부심을 가졌던 것은 머리로만 알던 영어였고, 그 도시의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삶이 빚어낸 또 다른 문법이었다는 것을.
에이미 탄의 글에는 또 하나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다. 그녀가 문학 강연을 하던 자리에 어머니가 처음으로 참석했던 날의 이야기다. 그녀는 그동안 수십 번 반복해온 똑같은 강연을 하고 있었는데, 객석에 어머니가 앉아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순간 자신의 말투가 얼마나 낯설고 딱딱한지 스스로 놀랐다고 고백한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학술적 표현들이 갑자기 부끄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래 멈춰 서야 했다.
나 역시 강의실에서는 정교한 학술 용어로 스타인벡의 상징 체계를 설명하다가도, 어머니와 통화할 때는 전혀 다른 언어를 쓴다. 다만 나의 경우 그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다. 캐나다에 가기 전까지는, 머리로만 알던 영어와 삶으로 배운 영어 사이의 그 간극이 언젠가 나를 침묵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강의실에서 마주친 또 다른 머리로만 알던 영어
한국에 돌아와 다시 강단에 섰을 때, 이번에는 반대편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보게 되었다.대학 신입생들에게 교양영어 과정인 ‘실용영어’를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문법 문제집을 성실히 풀어 왔지만, 정작 환자 역할극에서 “It hurts here”라는 짧은 문장 앞에서 얼어붙었다. 완벽한 5형식 문장을 만들려다가 정작 손으로 배를 가리키며 아파하는 환자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는 학생들, 바로 머리로만 알던 영어에 갇힌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해 여름 런던의 어느 은행 창구에 서 있던 내 모습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시험 점수는 훌륭한데 정작 말은 못 하는 학생, 반대로 문법은 어설퍼도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끝내 뜻을 전하고야 마는 학생. 머리로만 알던 영어에 갇힌 쪽과 그렇지 않은 쪽, 둘 중 누가 진짜 영어를 하고 있는가, 나는 매 학기 이 질문 앞에 다시 선다. 캐나다에서 배운 것을 강의실에서 되갚음 받는 셈이다. 완벽한 문장보다 먼저 건네지는 서툰 한마디가, 결국 환자의 통증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말이 된다는 것을.
나는 학생들의 실용영어 답안지를 채점할 때마다 에이미 탄이 겪었던 빈칸 채우기 시험의 딜레마를 떠올린다. 문법적으로 완벽한 답안과, 조금 어색하지만 자기만의 표현이 살아 있는 답안 사이에서 나는 점점 더 후자에 마음이 기운다. 시험지 위의 정답과 삶 속의 정답은 애초에 같은 기준으로 채점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사 학위가 있어도, 삼십 년 가까이 영어를 가르쳐도, 결국 머리로만 알던 영어는 삶의 언어 앞에서 누구나 다시 초심자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강의실이 조용해졌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완벽한 문법 규칙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어른의 고백이었는지도 모른다.
머리로만 알던 영어를 내려놓다
『분노의 포도』를 오래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새삼 다가온 장면도 있었다. 스타인벡이 그려낸 오키(Okie) 이주민들의 말은 표준 문법과는 거리가 멀다. 이중 부정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시제는 종종 어긋난다. 그러나 그 어눌한 말들이 실어 나르는 슬픔과 존엄은 어떤 정제된 문장보다 무겁다. 강의실에서 그 대사를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나는 정작 문법의 정확함이 아니라, 그 부정확함이 품은 진실을 짚어주곤 했다. 그런데 그 진실을 몸으로 겪은 것은 학자가 된 지 한참 뒤, 이역만리의 이민국 창구 앞에서였다.
요즘도 가끔 저녁 시간에 배달 알바를 하다 보면 비슷한 순간과 마주친다. 원룸 문 앞에서 물건을 받아 든 외국인 유학생이 서툰 한국어로 “감사, 감사”를 반복할 때, 나는 완벽한 문장 대신 짧은 미소와 손짓으로 답한다. 그 순간 우리 둘 사이를 오가는 것은 머리로만 알던 영어나 정확한 문법이 아니라 그저 서로를 향한 최소한의 성의였다. 그 장면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2008년 런던의 은행 창구에 서 있던 나 자신을, 그리고 그 창구 저편에서 나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던 이름 모를 직원들을 함께 떠올린다.
그 후로 이어진 기러기 아빠의 생활 속에서, 나는 화면 너머로 가족을 만날 때마다 비슷한 사실을 다시 배운다. 완벽하게 정리된 안부 인사보다, 딸이 대충 던지는 실없는 농담 한마디가 훨씬 더 정확하게 마음에 가닿는다는 것. 영상통화 화면 한구석에서 크림색 토이푸들 모카가 카메라를 향해 짖을 때, 딸은 굳이 그럴듯한 말을 고르지 않고도 그 개 짖는 소리 하나로 온 가족을 웃게 만든다. 말의 자격은 격식이 아니라, 그 말이 오래 놓여 있던 삶의 자리가 매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고 머뭇거리기보다 불완전한 문장이라도 먼저 건네는 일, 그것이 내가 캐나다에서 다시 배운 언어였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왔지만,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귀한 언어학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였다.
요즘 블로그에 스타인벡과 영미문학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도 나는 종종 이 위로를 다시 떠올린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문장, 흠잡을 데 없는 논증만이 좋은 글이라는 강박을 오래 지니고 살아왔다. 그 강박의 정체 역시 결국 머리로만 알던 영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독자들이 오래 머무는 글은 매끄러운 문장보다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이 살아 있는 글이라는 것을, 나는 최근 몇 달의 블로그 운영을 통해 다시 배우고 있다. 학위 논문을 쓸 때는 감히 넣을 수 없었던 이 개인적인 고백들이, 오히려 지금은 가장 정직한 글쓰기의 재료가 되어준다.
머리로 배운 영어와 삶으로 배운 영어 사이의 거리는 아마 완전히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거리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배움의 여백으로 여기게 된 것, 그것이 2008년 여름 이후 내가 얻은 유일한 확신이다.

지금도 전주의 밤, 서재에 앉아 그 시절 서류들을 들춰볼 때가 있다. 이민국 도장이 찍힌 낡은 파일 넘버 통지서와,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오래된 영문학 책 한 권. 두 물건이 같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풍경이야말로 내 지난 20년을 가장 정직하게 요약해 주는 정물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런던의 그 골목 이후, 나는 더 이상 영어를 잘한다 못한다로 가르지 않는다. 머리로만 알던 영어는 결국 절반의 언어였을 뿐이고, 나머지 절반은 늘 사람 쪽에 남아 있었다. 다만 가끔 궁금해진다 — 내가 정말 배워야 했던 것은 문법이었을까, 아니면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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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추천:
- SuperSummary의 “Mother Tongue” 작품 요약·해설 페이지 — https://www.supersummary.com/mother-tongue/summary/
- Amy Tan 공식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