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타인벡 깊이 읽기 ②] 짐 케이시 그리스도 의 3가지 뿌리 — 「공화국 찬가」, 조 힐, 우디 거스리

짐 케이시 그리스도는 과연 스타인벡의 순수한 창작물일까? 아니면, 미국 역사 속에 오래전부터 흐르고 있던 어떤 거대한 전통의 귀환일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더 이상 단순한 소설이 아니게 된다.
지난 1편에서 우리는 짐 케이시가 예수 그리스도와 이니셜(J.C.)을 공유하고, 광야로 나가 사색하며, 순교자적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임을 확인했다. [내부 링크: 짐 케이시가 목사를 그만둔 3가지 이유]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절반만 본 것이다. 짐 케이시 그리스도는 2,000년 전 복음에서만 온 것이 아니다. 남북전쟁의 전장을 거쳐, 1915년 처형대에 선 노동운동가를 지나, 오클라호마의 민요 가수에게까지 이어진 미국 민간전승의 저항하는 그리스도 전통 속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1. 「공화국 찬가」 — 구원의 그리스도에서 해방의 그리스도로
1938년 10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은 출판사에 매우 이례적이고 강력한 요청을 전달한다. “이 책의 서두에 반드시 「공화국 찬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 전곡 가사를 실어야 합니다.” 대공황의 참상을 기록한 서사시 『분노의 포도』의 문을 여는 열쇠로 왜 그는 굳이 남북전쟁 당시의 군가를 선택했을까? 이 질문이 짐 케이시 그리스도 형상화의 본질로 우리를 안내하는 첫 번째 실마리다.
1862년 줄리아 워드 하우(Julia Ward Howe)가 발표한 「공화국 찬가」는 북부 연방군의 군가였다. 노예제 폐지라는 시대적 과제를 종교적 언어로 표현한 이 노래는, 전쟁터의 병사들이 단순한 전투원이 아니라 신의 뜻을 수행하는 순교자임을 선언했다. 스타인벡이 이 노래를 소설 서두에 고집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 노래의 가사들이 “책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 번째 연의 핵심 구절이 결정적이다.
“As He died to make men holy, let us die to make men free.”
“그분께서 인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죽으셨듯이, 우리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죽자.”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결정적인 신학적 전환이 일어난다. 전통적인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개인의 영혼 구원(make men holy)’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죽음의 목적은 ‘인간의 자유(make men free)’다. 내세의 구원이 아니라 현세의 해방이다. 거룩함(holiness)이 아니라 자유(freedom)다. 이 단 하나의 단어 교체가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을 뒤집는다.
이것이 바로 짐 케이시 그리스도가 전통적인 복음주의 목사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케이시는 설교단을 떠나 노동조합 조직가가 된다. 감옥에서 그는 홀로 기도하는 대신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사회적 각성을 나눈다. 그의 죽음은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지 않는다. 대신 굶주린 노동자들의 단결을 불러일으킨다. 「공화국 찬가」가 열어놓은 새로운 그리스도론 — 해방의 그리스도론 — 이 케이시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소설 25장 끝에 나오는 스타인벡의 문장은 이 군가의 직접적인 메아리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간다.” 책의 제목과 군가의 가사, 그리고 케이시의 죽음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제목 자체가 이미 「공화국 찬가」의 첫 연 — “그분의 분노의 포도를 짓밟는 곳에 오셨다(He is trampling out the vintage where the grapes of wrath are stored)” — 에서 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스타인벡이 이 군가를 얼마나 깊이 소설 전체에 새겨 넣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2. 조 힐 — “나는 죽지 않는다”: 짐 케이시 그리스도의 원형
1915년 11월 19일, 스웨덴 출신 노동운동가 조 힐(Joe Hill)이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총살형으로 처형됐다. 살인죄였지만 많은 이들은 그의 죽음이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정치적 조작이라고 믿었다. 재판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던 그가 처형 직전 남긴 말은 이랬다. “내 죽음에 슬퍼하지 마라, 그리고 단결하라(Don’t mourn for me. Organize!).”
조 힐의 이 짧은 유언은 단순한 저항의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을 운동의 불씨로 삼겠다는 선언이었다. 개인으로서는 처형당하지만, 사상으로서는 노동자들이 모이는 곳마다 살아 돌아오겠다는 의지였다. 알프레드 헤이스(Alfred Hayes)는 1925년 시 「나는 지난 밤 조 힐의 꿈을 꾸었다」(“I Dreamed I Saw Joe Hill Last Night“)에서 조 힐을 부활하는 순교자로 형상화했다.
“They framed you on a murder charge.” / “‘But I ain’t dead,’ says he.”
“그들은 당신을 살인죄로 조작했다. / 조는 말한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는다.”
이 시에서 조 힐의 부활 선언은 복음서의 부활 서사와 정확하게 겹친다. 빌라도 앞에서 침묵한 예수처럼, 재판에서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한 조 힐의 태도 역시 ‘그리스도화(christologization)’의 핵심 장치였다. 침묵은 굴복이 아니라 위엄이고, 패배가 아니라 예언이다. 그리고 조 힐은 선언한다. 노동자들이 뭉치는 곳이면 어디든 자신이 함께 있겠다고.
이 구조가 그대로 짐 케이시 그리스도에게 이식된다. 케이시는 파업 현장에서 자경단원들에게 구타당해 죽는다. 그러나 그의 죽음 직전 외침은 조 힐의 유언과 같은 패턴이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 일에 끼어든 거야. 너희들 때문에 애들이 굶고 있어.” 루카 복음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Lk 23:34)와 겹치는 이 순간, 케이시는 복음의 예수이자 조 힐이다.
그리고 케이시의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분노의 포도』후반에 톰 조드가 어머니 마 조드(Ma Joad)와 작별하며 말한다.
“Wherever there’s a fight so hungry people can eat, I’ll be there. Wherever there’s a cop beatin’ up a guy, I’ll be there. […] An’ when our folks eat the stuff they raise an’ live in the houses they build—why, I’ll be there. […] I’ll be ever’where—wherever you look. Wherever they’s a fight so hungry people can eat, I’ll be there.”
“배고픈 사람들이 먹기 위해 싸우는 곳이면 어디든 제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 이런, 꼭 케이시처럼 얘기하고 있네.”
톰 스스로 “꼭 케이시처럼 얘기하고 있네”라고 말하는 이 순간이 소설 전체의 정점이다. 짐 케이시 그리스도의 말이 톰의 입을 통해 부활한다. 조 힐이 헤이스의 시 속에서 부활했듯이. 케이시와 조 힐, 두 인물은 모두 노동자들을 단결하게 하고 순교자처럼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저항하는 그리스도론의 같은 계보에 속한다.
이 순간 짐 케이시 그리스도는 한 개인이 아니라 “확산되는 존재”가 된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전파의 시작인 것이다. 조 힐의 말 — “But I ain’t dead” — 은 케이시의 죽음 이후 톰 조드라는 육신을 입고 다시 세상으로 걸어나온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전파의 시작이다.”
3. 우디 거스리 — “전도사 케이시는 단지 노동자일 뿐이다”

오클라호마 태생의 민요 가수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는 1940년 존 포드(John Ford) 감독의 영화 〈분노의 포도〉를 보고 즉각 반응했다. 그는 그날 밤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톰 조드의 발라드」(“The Ballad of Tom Joad“)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소설을 읽지 않은 채 영화만 보고 만든 이 17연짜리 곡에서, 거스리는 케이시를 이렇게 노래했다.
“Preacher Casey was just a working man.”
“전도사 케이시는 그저 노동자일 뿐이다.”
이 단 한 줄이 짐 케이시 그리스도의 세속화를 완성한다. 그리스도는 더 이상 하늘 위 보좌에 앉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먼지 날리는 길 위에서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걷고, 평등을 설교하다 박해받는 ‘일하는 사람’이다. 신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완전한 성육신(Incarnation)’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는 것을 넘어, 이제 노동자의 작업복을 입는다.
거스리의 통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같은 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발표했다. 이 노래에서 예수는 경제적 평등의 설교자이자 근면한 이주 노동자로 묘사된다.
“Jesus Christ was a man who traveled through the land / A hard working man and brave / He said to the rich ‘Give your goods to the poor’ / But they laid Jesus Christ in His grave.”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을 여행한 사람이었다 / 용감하고 근면한 사람 / 그는 부자들에게 말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라’ /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땅에 묻었다.”
거스리의 눈에 케이시와 예수는 같은 인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거스리에게는 예수가 곧 케이시였고, 케이시가 곧 예수였다. 성경 속 인물과 소설 속 인물이 미국의 민요 속에서 완전히 합쳐진 것이다. 스타인벡도 거스리의 이 음악적 직관을 정확히 알아보았다. 그는 거스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억압에 대항하여 싸우고 견디는 사람들의 의지가 있다. 우리가 이것을 미국적인 정신이라고 부른다.”
짐 케이시 그리스도 형상과 거스리의 예수 형상은 같은 미국적 정신의 두 얼굴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거스리의 이후 세대에도 계속 흐른다. 이완 맥콜(Ewan MacColl)의 「목수의 발라드」(“The Ballad of the Carpenter”, 1960), 잭슨 브론(Jackson Browne)의 「반역자 예수」(“Rebel Jesus”, 1991), 스티브 얼(Steve Earle)의 「워싱턴의 크리스마스」(“Christmas in Washington”, 1997)까지 — 거스리가 열어놓은 이 전통은 케이시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외부 링크: Woody Guthrie Foundation — woodyguthrie.org]
4. 세 전통이 한 인물 안에서 만나다 — 짐 케이시 그리스도의 의미
지금까지의 흐름을 하나의 계보로 정리하면 이렇다.
- 「공화국 찬가」(1862) — 해방의 그리스도. 죽음의 목적이 개인 구원에서 사회적 자유로 이동한다.
- 조 힐(1915) — 죽지 않는 그리스도. 순교는 소멸이 아니라 확산이다.
- 우디 거스리(1940) — 노동자의 그리스도. 초월적 존재가 완전히 세속화되어 작업복을 입는다.
- 짐 케이시(1939) — 이 세 흐름이 하나로 결합된 집약체.
이 계보를 이해하면, 케이시가 왜 그토록 인상적인 인물인지가 선명해진다. 그는 단순히 예수를 닮은 인물이 아니다. 그는 미국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온 저항의 신학적 전통 — 「공화국 찬가」의 해방 신학, 조 힐의 순교 신화, 거스리의 노동 복음 — 을 한 몸에 담은 인물이다.
그리고 스타인벡은 이 계보가 케이시에서 끝나지 않도록 설계했다. 케이시가 죽은 후 톰 조드가 그 말을 이어받는다. 톰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에는 독자가 그 질문을 안고 책을 덮는다. 스타인벡이 독자에게 던지는 궁극적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짐 케이시는 누구인가?
[외부 링크: The National Steinbeck Center — steinbeck.org]
결론 — 케이시는 왜 죽지 않는가
짐 케이시는 결국 죽는다. 캘리포니아의 차가운 강가에서, 자경단원의 몽둥이에 맞아 쓰러지는 그의 마지막은 비참해 보인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그의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설계했다. 케이시의 몸은 강가에 남지만, 그의 말은 톰의 입을 통해 걸어나간다.
짐 케이시 그리스도는 스타인벡의 천재적 창조물이지만, 동시에 미국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저항의 신학적 전통이 낳은 결정체다. 「공화국 찬가」는 죽음의 목적을 개인 구원에서 인간 해방으로 전환시켰고, 조 힐은 순교하는 노동자를 그리스도로 형상화했으며, 우디 거스리는 예수를 노동자로, 노동자를 예수로 노래했다. 케이시는 이 세 전통의 상속자다.
30년 넘게 스타인벡 문학을 연구해 온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짐 케이시 그리스도는 시대를 초월하여 불의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다시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시대의 짐 케이시가 여전히 어딘가에서 외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 힐의 말처럼 — “But I ain’t dead.”
3편에서는 케이시의 말을 이어받은 톰 조드가 어떻게 새로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거듭나는지, 그리고 스타인벡이 이 모든 것을 통해 독자에게 던지는 궁극적 질문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존 스타인벡 문학 전체를 한눈에 보려면 → 존 스타인벡 완전 가이드
시리즈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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