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함께한 여행 – 58세의 스타인벡이 길을 나선 이유

전주 밤거리를 달리다 떠오른 한 사람
요즘 나는 저녁마다 차를 몬다.
올리브영의 배달 상품을 차에 싣고 전주의 이곳저곳을 누비는 일. 교수 연구실과 배달 현장 사이, 그 이질적인 두 세계를 오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가끔 이상한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바로 1960년, 58세의 나이에 낡은 트럭 한 대를 몰고 미국 전역을 떠돌기로 결심했던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이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은 내게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다. 핸들을 잡을 때마다 되살아나는, 어떤 개인적인 공명이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Travels with Charley in Search of America)은 1962년 출간된 존 스타인벡의 여행 에세이다. 스타인벡은 58세이던 1960년 가을, 개조한 캠핑 트럭 ‘로시난테’에 애완 푸들 찰리를 태우고 미국 전역 1만 마일을 홀로 횡단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바로 그해 출간된 이 책은 비평가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스타인벡의 대표 산문이다.
스타인벡은 이 여행을 떠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내 나라를 모르고 있었다.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 왔다.”
I did not know my own country. I, an American writer, was writing about America from memory.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진짜로 몸에 박힌 것은 —그로부터 훨씬 후, 저녁 노을이 번지는 전주의 어느 도로를 혼자 운전하던 순간이었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의 출발점 — “나는 내 나라를 모른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의 출발점은 화려한 모험 충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스타인벡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25년 동안 뉴욕의 집에 앉아 책과 신문과 통계 자료만으로 미국을 이해해 왔다고. 세계적인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불과 2년 전에, “나는 내 나라를 모른다”고 인정한 것이다.
왜 하필 58세였는가. 찰리와 함께한 여행을 연구하면서 내가 오래 붙들었던 질문이다. 스타인벡에게는 이미 부와 명예가 있었다. 안락한 뉴욕 생활도 있었다. 왜 그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트럭 한 대, 푸들 한 마리만 데리고 길을 나섰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것은 탈출이 아니라 직면이었다.
스타인벡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점점 박제된 지식의 세계로 굳어가고 있다는 것을. 글을 쓸수록, 명성이 높아질수록, 실제 세상과는 오히려 멀어진다는 아이러니. 찰리와 함께한 여행은 바로 그 아이러니에 대한 스타인벡 특유의 응답이었다.
2003년, 내가 산호세 주립대학교의 마사 히즐리 콕스 스타인벡 연구센터(The Martha Heasley Cox Center for Steinbeck Studies)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던 시절, 살리나스의 국립 스타인벡 센터(National Steinbeck Center)에서 이 여행과 관련된 자료들을 직접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방대한 연구 자료가 아니었다. 트럭 로시난테의 실제 사진 한 장이었다. 녹슬고 낡은 차체. 그 앞에 서자, 이 여행이 얼마나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결단이었는지가 비로소 실감 났다.

[내부 링크: 스타인벡 살리나스 — 23년 전, 작가의 땅을 처음 밟던 날]
로시난테와 찰리 — 스타인벡이 선택한 두 개의 상징
찰리와 함께한 여행에서 스타인벡이 트럭에 붙인 이름은 로시난테(Rosinante)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말의 이름. 늙고 비쩍 말랐지만 주인의 이상한 모험을 끝까지 함께한 그 말. 스타인벡은 이 이름 하나로 자신의 여행 전체를 규정한다. 나는 늙었다. 그러나 아직 꿈꿀 수 있다.
문학 연구자로서 이 명명 행위를 처음 분석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유머가 아님을 직감했다. 로시난테는 찰리와 함께한 여행 전체를 관통하는 자기 풍자이자 자기 긍정의 언어다. 스타인벡은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 우스꽝스러움을 기꺼이 안고 간다.
조수석에 앉은 푸들 찰리(Charley)는 또 다른 차원의 상징이다. 찰리는 판단하지 않는다. 비평하지 않는다. 그저 옆에 있다. 그러나 이 침묵의 동반자는 여행에서 놀라운 기능을 수행한다. 낯선 지역에서 경계심을 풀지 않던 사람들도 귀여운 푸들 앞에서는 먼저 말을 건넨다. 찰리는 스타인벡의 가장 효과적인 대화 촉매였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에서 찰리의 존재는 단순한 반려동물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스타인벡의 소통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세계적인 작가의 권위를 내세우는 대신, 푸들 한 마리 뒤에 숨어 평범한 미국인과 눈높이를 맞춘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이 건드린 것 — 지식애(Epistemophilia)
찰리와 함께한 여행을 학술적으로 분석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지식애(Epistemophilia)다.
지식을 향한 사랑, 혹은 앎에 대한 충동.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다. 세상을 직접 만지고 냄새 맡고 부딪혀 그 질감을 느끼려는 본능적인 욕구다.
스타인벡은 찰리와 함께한 여행 전반에서 이 충동을 은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트럭 운전사와 나눈 짧은 대화, 작은 마을 식당의 허름한 메뉴판, 주유소 직원의 피곤한 눈빛 하나하나를 미국이라는 거대한 텍스트의 일부로 읽는다. 스타인벡 자신은 이 여행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라는 소우주 안의 대우주를 발견하는 과정.”
The macrocosm of microcosm me — discovering America through the lens of my own small self.
이 문장은 찰리와 함께한 여행의 방법론 전체를 압축한다. 작은 것을 깊게 보면 전체가 보인다. 개인의 편린 속에 시대가 있고, 한 골목의 풍경 속에 나라 전체의 이야기가 있다.
30년 넘게 스타인벡을 연구해온 나는 이것이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시선임을 안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서 조드 가족 한 사람의 이야기가 대공황 미국 전체의 이야기가 되는 방식. 『통조림 공장가』(Cannery Row)에서 몬터레이 골목의 부랑자들이 인류의 축소판이 되는 방식. 찰리와 함께한 여행도 그 연장선에 있다.
나는 매일 밤 전주 골목을 달리면서 가끔 이 방법론을 생각한다. 배달 현장에서 만나는 짧은 교환들 — 아파트 현관 앞의 어색한 인사, 비 오는 날 문을 열어주는 노인의 손 — 이것들이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 무언가 큰 것이 있다는 감각. 그게 스타인벡이 찰리와 함께한 여행에서 훈련한 시선과 닮아 있다.
[내부 링크: 핸들 위의 인문학 — 배달 교수가 전주 44km에서 배운 3가지 삶의 무게]
비평가는 외면했고, 독자는 선택했다

1962년 출간된 찰리와 함께한 여행에 대한 당시 비평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가볍다.” “노벨상 작가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스타인벡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바로 그해 출간된 작품이었다. 비평가들은 이 여행 에세이를 부적절한 쇠퇴의 증거로 읽었다. 그러나 독자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읽힌다.
나는 이 간극이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비평가들은 완성도를 보았다. 독자들은 태도를 보았다.
58세의 노작가가 편안한 의자에서 일어나 낡은 트럭에 올라타 미국의 진짜 얼굴을 직접 보러 가겠다는 그 결심. 찰리와 함께한 여행이 독자들의 마음에 살아남은 것은 그 태도 때문이다. 완벽한 문장 때문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길을 나서는 인간의 용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여행이 깊어질수록 스타인벡의 확신은 오히려 흔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의 설렘은 혼란으로 바뀌고, 확신은 의문으로 변한다. 그리고 시카고의 한 호텔방에서,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미국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이 진정한 문학 작품인 이유는 바로 이 실패에 있다. 그는 답을 찾아 떠났지만, 돌아올 때 더 많은 질문을 안고 왔다.
[내부 링크: 스타인벡 시카고 호텔방에서 발견한 것 — 쓸쓸한 해리와 인간 인식의 3가지 비밀]
찰리와 함께한 여행이 남긴 것 — 길 위에서만 알 수 있는 것
찰리와 함께한 여행을 오래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나는 이 책이 학생들에게 특히 깊이 닿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이 성공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은 답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58세의 한 인간이 여전히 세상 앞에서 겸손하고 싶다는 결심의 기록이다.
스타인벡 연구 30년 동안 그의 많은 작품들을 강의실에서 다뤘다. 그런데 찰리와 함께한 여행만큼 내 일상과 직접 대화하는 텍스트는 많지 않다. 이 책은 강의실이 아니라 핸들을 잡은 채로 읽어야 한다.
스타인벡이 찰리와 함께한 여행을 통해 남긴 가장 조용하고 강렬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나이 드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더 이상 세상이 궁금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궁금증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아직 길 위에 있다.
58세 스타인벡이 핸들을 잡은 이유가 궁금하다면, 매일 전주를 운전하는 나의 이야기도 함께 읽어보세요. → 핸들 위의 인문학
시리즈 내비게이션
이 글은 찰리와 함께한 여행 3부작의 첫 번째 글입니다.
👉 2편: 스타인벡 시카고 호텔방에서 발견한 것 — 쓸쓸한 해리와 인간 인식의 3가지 비밀
👉 3편: 존 스타인벡은 왜 “나는 미국을 보지 못했다”고 했을까 — 찰리와 함께한 여행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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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추천
📌 존 스타인벡 문학 전체를 한눈에 보려면 → 존 스타인벡 완전 가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