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벡 종군기자 시절을 상징하는 프레스 배지와 야전 노트, 타자기

스타인벡 종군기자, 전쟁을 지운 5가지 방법

스타인벡 종군기자는 전쟁의 거대한 전략보다 전선의 이름 없는 병사들이 견뎌낸 일상에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스타인벡 문학에서는 이 르포르타주가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 인간 존재의 숭고함과 비극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고도의 문학적 장치로 깊이 있게 다루어집니다. 이 글에서 1958년 출간된 종군기사 모음집을 통해 대문호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어떻게 인간주의적 시선으로 포착했는지 그 문학적 통찰을 정리했습니다.

2003년 연구년 기간에 산호세 주립대학교 마사 히즐리 콕스 스타인벡 연구센터(The Martha Heasley Cox Center for Steinbeck Studies)에서 방문교수로 머물던 시절, 필자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1943년 뉴욕 헤럴드 트리뷴(New York Herald Tribune)의 마이크로필름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스타인벡 종군기자의 기사들은 거대 정치인이나 장군들의 거창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지옥 같은 포화 속에서 젖은 전투화를 말리려 애쓰는 어린 일병의 손가락, 혹은 고향의 연인에게 쓸 편지지를 구하려 애쓰는 통신병의 초조한 눈빛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인쇄된 단행본에서는 다듬어진 문장들이었지만, 원본 신문 칼럼에서는 훨씬 거칠고 즉흥적인 리듬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30년 넘게 미국문학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필자에게 이 경험은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나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에서 느꼈던 대문호의 시선이 어디에서 완성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강렬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스타인벡 종군기자 활동은 1943년 6월부터 12월까지 영국,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전선을 누비며 결실을 맺었습니다. 당시 그는 이미 퓰리처상을 수상한 대작가였으나 안전한 서재를 버리고 직접 전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 연재했던 종군기사들을 모아 1958년 단행본으로 묶어낸 책이 바로 『옛날에 전쟁이 있었다』(Once There Was a War)입니다. 이 책은 영웅주의와 거대한 승리 서사가 지배하던 당대의 전쟁 문학판에서 극히 예외적이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1943년 종군기자 시절 스타인벡을 연상시키는 타자기와 노트가 놓인 참호 막사 내부

거대 서사를 거부하고 포착한 미시적 인간성

스타인벡 종군기자의 기사들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쟁의 거시적 정세에 대한 의도적 침묵입니다. 그는 전략적 승패나 부대 이동 같은 거창한 군사 뉴스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전선 뒤편에서 벌어지는 병사들의 무수한 미시적 사건들에 렌즈를 맞추었습니다.

“전쟁은 거대한 군대의 이동이나 장군들의 지혜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것은 추위, 지루함, 그리고 아주 작은 위안들에 대한 기억이다.”
“War is not made of great military movements or the wisdom of generals. It is made of cold, boredom, and very small comforts.”

누군가는 커피를 마십니다. 누군가는 집에서 온 편지를 읽습니다. 누군가는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립니다. 누군가는 전우와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겉으로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평범함이 스타인벡 문학의 핵심입니다.

전쟁은 인간을 영웅으로 만들기 전에 먼저 평범한 사람으로 존재하게 만듭니다. 스타인벡 종군기자는 바로 그 평범함을 끝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폭격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길잃은 강아지에게 통조림을 나눠주는 병사, 머나먼 고향의 농사 소식을 나누며 눈시울을 적시는 청년들의 모습이 그의 펜 끝에서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이러한 미시적 관찰은 스타인벡 종군기자 특유의 리얼리즘 기법이 현장 보도문이라는 장르와 만났을 때 어떤 폭발력을 갖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Soldiers” 아닌 “Boys” — 이름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주는 서사 전략

“나는 결코 내가 직접 본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전했다.”
I never admitted to seeing anything myself, but always put my story in the mouth of another.”

스타인벡이 서문에서 남긴 이 고백은 그의 서술 기법을 정확히 설명합니다. 그는 자신이 목격자임을 내세우지 않고, 병사들의 대화와 몸짓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어뢰정들이 독일군과 교전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조차, 스타인벡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대화는 놀랄 만큼 생생합니다.

필자가 오랫동안 흥미롭게 읽어 온 부분은 스타인벡의 단어 선택입니다. 그는 병사들을 이야기하면서 soldiers보다 boys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 작은 차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Soldier는 군대라는 조직 안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반면 boy는 한 가정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형제이며, 아직 삶을 충분히 살아보지 못한 젊은 인간을 의미합니다. 스타인벡 종군기자는 병사를 국가의 부속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했습니다. 이 언어 선택 하나만으로도 『옛날에 전쟁이 있었다』는 군사 보고서가 아니라 문학이 됩니다. 이 점은 『분노의 포도』에서도 반복됩니다. 조드 가족은 경제학의 숫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생쥐와 인간』에서도 레니와 조지는 사회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스타인벡 문학에서는 언제나 제도보다 사람이 먼저 등장합니다.

벤토테네, 시칠리아, 영국의 정원 — 디테일이 만드는 진실

책에 실린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은 미군 낙하산 부대가 이탈리아 벤토테네 섬의 독일군 수비대를 속임수로 항복시키는 장면입니다. 실제 병력보다 훨씬 큰 규모인 것처럼 위장하여 상대를 심리적으로 굴복시키는 이 일화에서, 스타인벡은 전략의 거창함이 아니라 그 계략을 실행하는 개별 병사들의 말투와 태도에 집중합니다. 시칠리아의 한 작은 마을이 해방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의미보다 그 순간 골목에 서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먼저 서술됩니다.

폐허가 된 유럽 마을을 새벽에 지나가는 지친 보병들과 그 뒤를 조용히 따르는 종군기자

흥미로운 것은 영국의 정원 풍경을 다룬 칼럼입니다. 향수에 젖은 미군 병사들이 영국식 정원 한켠에 고향의 채소를 심는 장면은, 전쟁이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사소한 습관에 매달려 자신을 지탱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디테일에 대한 애정은 스타인벡 종군기자의 시선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그는 전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지속되는 인간의 습관을 기록한 것입니다.

검열의 벽을 넘어선 절제된 문장의 힘

당시 모든 종군기자의 글은 군당국의 엄격한 보도 검열을 거쳐야 했습니다. 아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참혹한 시신 묘사나 군 내부의 부조리는 기사화될 수 없었습니다. 스타인벡 종군기자 역시 이러한 제도적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헛된 영웅주의를 부풀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회적 묘사와 상징, 그리고 비유라는 문학적 장치를 활용했습니다.

그는 병사들의 심리적 지옥을 직접적으로 기술하는 대신, 그들이 전쟁터에서 겪는 감각의 마비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왜 자신들이 겪은 일을 고향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지, 왜 전장의 기억이 순식간에 안개처럼 사라지는지를 과학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풀어냈습니다.

“The nightmare of war erases itself from the memory of those who survive it. The body and mind close down the memory of pain in order to live.”
“전쟁의 참상은 그것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스스로를 지워버린다. 몸과 마음이 살기 위해 통증의 기억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타인벡은 이렇게도 썼습니다.

“I have found that one cannot describe war. One can only describe people in war.”
“전쟁 자체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전쟁 속의 사람들만을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폭격의 참혹함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폭격이 끝난 뒤 병사들이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우를 잃은 슬픔을 직접 외치기보다, 식판을 하나 더 치우는 병사의 행동을 묘사합니다. 검열관의 붉은 펜을 피하면서도 스타인벡 종군기자는 전장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도 다른 길을 걷습니다. 헤밍웨이가 개인의 용기와 침묵을 통해 전쟁을 그렸다면, 스타인벡은 평범한 병사들의 일상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드러냅니다.

낡은 나무 책상 위의 타자기, 야전 노트, 접힌 전시 지도가 놓인 스타인벡의 집필 공간

『폭격기 출격』에서 『옛날에 전쟁이 있었다』까지, 그리고 1958년 서문이 던지는 역설

스타인벡의 전쟁 관련 논픽션은 이 책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1942년 출간된 『폭격기 출격』(Bombs Away)는 미 육군항공대의 요청으로 쓰인, B-17 폭격기 승무원들의 훈련과 협동, 임무 수행을 강조하는 성격이 짙은 책입니다. 물론 그 안에도 스타인벡 특유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 존재하지만, 작품 전체는 국가적 목적과 전시 분위기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옛날에 전쟁이 있었다』는 그로부터 불과 일 년 뒤에 쓰였음에도 훨씬 사적이고 회의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의 언어를 대변했다면, 다른 하나는 개인의 불편함을 대변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은 1958년 책을 출간하며 작가가 새롭게 덧붙인 서문(Introduction)입니다. 기사들이 작성된 지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써 내려간 이 서문에서 스타인벡 종군기자는 독자들에게 다소 도발적이면서도 솔직한 고백을 건넵니다. 자신이 1943년 당시에 썼던 글들이 사실은 참혹한 전장의 전체 진실 중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음을 밝힌 것입니다. 1958년은 이미 냉전이 한창이었고, 미국 사회는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신화화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스타인벡 종군기자는 15년 전 자신이 썼던 글들을 있는 그대로 묶어냄으로써, 전쟁을 추억거리나 승리의 신화로 포장하려는 시도를 경계했습니다.

이 머리말은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인류의 비극을 바라보는 스타인벡의 철학적 성숙을 보여주는 결정적 텍스트입니다. 1943년 현장에서 기록한 따뜻한 시선과 1958년의 냉철한 성찰이 만남으로써, 이 칼럼집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인문학적 고전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분노의 포도』에서 그는 이주민들의 삶을 기록했습니다. 『생쥐와 인간』에서는 사회적 약자의 꿈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전쟁이 있었다』에서는 전쟁 속 평범한 인간을 기록했습니다. 결국 그의 문학은 언제나 같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가.”

결국 스타인벡 종군기자의 『옛날에 전쟁이 있었다』가 오늘날 한국의 독자들에게 주는 가치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비인간적인 폭력과 거대한 시스템이 개인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순간에도, 우리가 끝내 지켜내야 할 것은 서로에 대한 연민과 인간성이라는 점입니다. 스타인벡은 전장의 참혹함 속에서도 이름 없는 개인들이 보여준 소소한 선함과 유대감이야말로 문명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종군기자 칼럼들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짓눌린 작고 무력한 존재들을 향해 던지는 대문호의 따뜻한 위로이자, 전쟁이라는 광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숭고한 기록입니다.

이 작품을 덮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총성이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병사의 눈빛이고, 전우를 위해 커피를 끓이던 손길이며, 절망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인간에 대한 그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것이 스타인벡 종군기자가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진짜 전쟁의 기억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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