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벡 깊이 읽기 ③]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가 톰 조드에게 남긴 3가지 유산
한 인간이 죽은 뒤에도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는 자경단원의 손에 살해당하는 순간, 소설의 무대에서 퇴장한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그 직후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배치한다. 마 조드와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톰 조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 놀랍도록 — 케이시의 말과 꼭 닮아 있는 것이다. 톰 스스로도 그것을 안다.
“Funny how I talk like Casy. Casy said it, I’m thinkin’ it. I been thinkin’ about Casy a lot lately.”
“이런, 꼭 케이시처럼 얘기하고 있네. 케이시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모양이에요.”
이 한 줄이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전체의 열쇠다.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는 어떻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이 마지막 3부에서 살펴본다. 케이시의 죽음이 단순한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톰 조드라는 인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과정, 로즈 오브 샤론(Rose of Sharon)의 마지막 행위가 완성하는 소설의 윤리적 결론, 나아가 90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이 글에서 다룬다.

①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에서 톰으로 — 정신의 계승이라는 문제
필자의 논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의 짐 케이시와 민간전승에서의 그리스도론적 전통」에서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가 단순히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한 인물에 그치지 않으며, 복음사가들로부터 남북전쟁, 알프레드 헤이스(Alfred Hayes),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로 이어지는 미국 민중 저항의 그리스도론적 전통 안에 놓인 인물임을 논증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그 계보를 블로그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케이시가 예수라면, 톰은 사도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5-16)라고 말한다.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의 정신은 정확히 이 구조 안에서 톰의 목소리로 이 세계에 살아남는다. 톰이 마 조드에게 남기는 말은 미국문학사에서 가장 강력한 연대의 선언 중 하나다.
“I’ll be ever’where — wherever you look. Wherever they’s a fight so hungry people can eat, I’ll be there. Wherever they’s a cop beatin’ up a guy, I’ll be there.”
저는 어둠 속에서 어디나 있는 존재가 되니까.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걸 달라고 싸움을 벌이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다. 이것은 의식의 전이, 혹은 정신의 계승이다. 스타인벡은 한 개인의 죽음을 하나의 역사적·집단적 의식으로 전환시킨다.
복음사가들 → 「공화국 찬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 → 조 힐(Joe Hill) →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 짐 케이시 → 톰 조드
스웨덴 출신의 노동운동가 조 힐(Joe Hill)은 1915년 처형 직전 “내 죽음에 슬퍼하지 마라, 그리고 단결하라”(Don’t mourn for me. Organize!)라는 말을 남겼다. 알프레드 헤이스의 1925년 시 「나는 지난 밤 조 힐의 꿈을 꾸었다」(“I Dreamed I Saw Joe Hill Last Night”)에서 조 힐은 선언한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는다”(But I ain’t dead).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곳 어디에나 있겠다는 이 약속의 언어 구조가,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의 이데올로기를 이어받은 톰의 선언과 정확히 겹쳐진다.
복음사가들이 말한 성령의 편재(遍在) —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18:20) — 는, 조 힐의 노동적 언어를 거쳐 케이시와 톰의 목소리로 부활한다.
스타인벡이 이 계보를 얼마나 의식적으로 설계했는지는 출판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1938년 10월, 스타인벡은 출판 대리인에게 편지를 보내 줄리아 워드 호웨(Julia Ward Howe)가 1862년 발표한 「공화국 찬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의 가사 전체를 『분노의 포도』 표제지에 반드시 실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노래들 중에 하나이다. 당신은 책을 읽으면서 노랫말들이 이 책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 노래의 핵심 구절 — “그 분께서 인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죽으셨듯이, 우리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죽으세”(As He died to make men holy, let us die to make men free) — 는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의 순교적 죽음이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해방의 서사임을 처음부터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② “꼭 케이시처럼 말하네” — 말의 주체가 바뀌는 순간
마 조드의 한 마디 — “꼭 케이시처럼 얘기하고 있네”(“You’re talkin’ like Casy”) — 는 이 소설 전체의 핵심이다. 겉으로는 톰이 말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케이시이며, 구조적으로는 공동체의 목소리다. 이것은 단순한 영향이 아니라 주체의 변화다.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는 인물에서 사상으로 이동한다.
케이시는 파업 현장에서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 자신을 죽이려는 자경단원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 일에 끼어든 거야. 너희들 때문에 애들이 굶고 있어.” 루카 복음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Lk 23:34)를 정확히 반향하는 이 외침은,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의 죽음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의식적 순교임을 확인시켜 준다. 예수가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며 제자들 곁을 떠났듯, 케이시는 투쟁의 영성을 톰에게 남기고 떠난다.
우디 거스리는 1940년 「톰 조드의 발라드」(“The Ballad of Tom Joad”)에서 케이시의 이데올로기를 예민하게 포착했다.
“나는 오랫동안 전능하신 주님을 위해 설교했다 / 우리 노동자들은 모두 함께 있게 되었다 /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기회를 얻지 못하니까.”(I preached for the Lord a mighty long time; Preached about the rich and the poor. Us workin’ folks got to all get together, ‘Cause we ain’t got a chance any more.) 목사의 언어를 버렸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은 케이시의 핵심이 이 몇 줄로 압축된다.
같은 해 거스리는 「자경단원」(“Vigilante Man”)에서도 이렇게 노래했다. “전도사 케이시는 단지 노동자일 뿐이다 / 그리고 그는 ‘뭉쳐라, 모든 근로자들이여’라고 말했다.”(Preacher Casey was just a working man, And he said, “Unite, all you working men.”)
③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가 완성한 것 — 로즈 오브 샤론의 젖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산(死産)의 비극을 막 겪은 로즈 오브 샤론이 굶어 죽어가는 낯선 노인에게 자신의 젖을 내어주는 장면이다. 스타인벡은 이 장면에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는다. 다만 로즈 오브 샤론의 “신비로운 미소”만 남겨둔다.
“She moved slowly to the corner and stood looking down at the wasted face… Then slowly she lay down beside him… ‘You got to,’ she said.”
그녀는 천천히 구석으로 가서 수척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곁에 누웠다… “드셔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 장면은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의 희생적 죽음이 소설의 다른 인물들 안에서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를 보여주는 최종적 완성이다. 케이시가 “모든 사람의 영혼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삶으로 가르쳤다면, 로즈 오브 샤론은 자신의 몸으로 그것을 증명한다. 자신이 잃은 아이 대신, 그 아이를 위해 준비했던 젖을 낯선 이에게 내어주는 행위 — 이것은 개인의 비극이 공동체적 나눔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케이시가 말로 시작한 것을, 로즈 오브 샤론이 몸으로 완성한다. 포도가 짓밟혀 분노의 즙이 짜이듯, 고통의 끝에서 비로소 이타적인 사랑이라는 포도주가 빚어지는 순간이다.
이 결말은 출판 당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도서관과 학교에서는 검열과 금서 조치를 시도했고, 초기 비평가들은 이 장면을 “혐오스럽고 거짓스러운 적화선전”이라고까지 평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충격과 불편함이야말로 스타인벡이 의도한 것이었다. 독자가 편안하게 책을 덮을 수 없도록 — 로즈 오브 샤론의 미소가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도록 — 설계된 결말이다.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가 말로 심은 씨앗이 이토록 불편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④ 2026년의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 — 구조는 바뀌었지만 질문은 같다
먼지 가득한 루트 66(Route 66)을 달리던 오키즈(Okies)의 이야기는 오늘날 플랫폼 경제 속 배달 라이더, 이주 노동자,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Dust Bowl이 플랫폼 알고리즘으로, 트랙터가 자동화 시스템으로 바뀌었을 뿐, 구조적 착취와 인간 존엄의 문제는 반복된다.
필자는 배달 노동을 직접 경험하며 스타인벡의 오키즈와 오늘날 플랫폼 노동자들 사이의 연결을 탐구해왔다.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가 루트 66의 먼지 속에서 설교를 버리고 노동조합 조직가가 되었듯, 오늘의 노동 현장에서도 “함께”라는 단어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저항의 언어다. 스타인벡은 이미 90년 전에 물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서로를 외면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은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가 직접 배달 노동을 경험하며 기록한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딜리버리 집시의 Vlog’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딜리버리 집시의 Vlog 바로가기]

존 스타인벡은 인간의 영혼이 개별적인 파편이 아니라, 커다란 하나의 줄기에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는 죽음을 통해 종결되지 않는다. 그는 톰의 목소리 안에서, 로즈 오브 샤론의 미소 안에서,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 안에서 계속 살아있다. 케이시는 목사의 언어를 버렸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은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작동하는 순간, 비극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포도주처럼 숙성되는 의미를 가진 경험으로 변한다. 복음사가들에서 「공화국 찬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 조 힐, 우디 거스리, 그리고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 → 톰으로 이어지는 이 계보는,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준엄한 명령이다.
“지금 당신 곁의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는 누구입니까?”
필자는 이 연결을 단순히 학문적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스타인벡을 연구하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직접 배달 노동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플랫폼 알고리즘 앞에 홀로 서 있는 라이더의 고독이 루트 66을 달리던 오키즈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몸으로 느꼈다. 유튜브 채널 ‘딜리버리 집시’를 통해 그 경험을 기록해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의 질문 — “인간은 시스템의 부품인가, 아니면 서로의 고통에 응답하는 존엄한 존재인가” — 은 90년 전 소설 속 질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존 스타인벡 문학 전체를 한눈에 보려면 → 존 스타인벡 완전 가이드
[시리즈 내비게이션]
← Part 1: [스타인벡 깊이 읽기 ①] 목사에서 혁명가로 — 분노의 포도 짐 케이시의 3단계 변신 (/짐-케이시-목사-분노의-포도)
← Part 2: [스타인벡 깊이 읽기 ②] 짐 케이시는 그리스도인가 — 조 힐, 우디 거스리와의 3가지 접점 (/짐-케이시-그리스도-조-힐-우디-거스리)
[관련 내부 링크]
『생쥐와 인간』 시리즈 · 『통조림 공장 가』 시리즈
[외부 링크]
Woody Guthrie Foundation — woodyguthrie.org
Joe Hill — Wikipedia 영문 페이지
The National Steinbeck Center — steinbeck.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