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은 왜 카인과 아벨 이야기로 시작하는가 — 당신 안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도입부: 당신 안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단순한 문학적 장식이 아닙니다. 많은 독자들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작품,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을 한 편의 장대한 가족사로 읽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뼈대는 카인과 아벨 신화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단지 “문제 많은 가족의 비극”으로 읽는 순간, 우리는 존 스타인벡이 숨겨놓은 가장 거대한 층위를 놓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삶을 자신의 의지로 개척해 나가는 독립적인 여정이라 믿지만, 때때로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 놓여 있음을 깨닫곤 합니다. 존 스타인벡의 필생의 역작인 『에덴의 동쪽』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한 가족사를 엿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원죄’와 ‘결핍’의 원형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에덴의 동쪽』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 신화를 현대적으로 다시 쓴 작품입니다. 스타인벡은 왜 20세기 캘리포니아의 가족 이야기에 굳이 가장 오래된 형제의 신화를 덧씌웠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에게 『에덴의 동쪽』은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전체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가족소설이 아니라 신화의 재서술이다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을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낸 “상자(box)” 같은 작품이라 불렀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편집자 팻 코비치(Pat Covici)에게 보낸 편지들—나중에 『소설 일지』(Journal of a Novel)라는 제목으로 출판된—에서 그는 이 작품을 “내 조국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라고 불렀으며, 소설의 토대를 이루는 창세기를 “세상의 완전한 사랑스러운 역사”로 상상했습니다. 남북전쟁에서 1차 세계대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작가 자신이 그동안의 작품을 “습작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정도로 모든 지식과 열정을 동원한 역작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는가, 악하게 태어나는가?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에서 끊임없이 선택하는 존재인가?
스타인벡은 이 질문을 추상적 철학이 아니라 가족 드라마 속에 녹여냅니다. 그래서 독자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 인물들의 갈등”이 아니라 “내 안의 갈등”을 읽고 있게 됩니다.
[관련 글 읽기: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선악의 구조와 주제의 통일성」
살리나스 계곡과 두 가문의 대칭 구조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신화의 무대는 바로 살리나스 계곡입니다. 스타인벡은 자신의 고향인 이 계곡을 배경으로, 실제 자신의 외가인 해밀턴(Hamilton) 가문과 허구의 트래스크(Trask) 가문을 교차시키며 장대한 서사를 구축합니다. 한 축에는 가난하지만 지적이고 도덕적인 사무엘 해밀턴과 그의 활기찬 자손들이 있고, 다른 한 축에는 막대한 부를 소유했으나 정서적 불모지와 폭력적인 갈등 속에 놓인 트래스크가가 존재합니다.
이 두 가문의 병렬 구조는 단순한 서사적 장치가 아니라, 선과 악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한 스타인벡의 철학적 설계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지리적 배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살리나스 계곡에서 동쪽으로는 “다정하고 햇볕이 가득한 밝고 화사한 산세”이고, 서쪽으로는 “음침하고 정이 가지 않고 무서운 산세”입니다. 지리적 배경 자체가 이미 선과 악의 상징적 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단순히 “이 가문은 선하고, 저 가문은 악하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가장 사악한 인물 케이트조차 아들 아론을 향한 공상 속에서 선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가장 선한 사무엘조차 아내 리자에게 숨긴 마음속 여인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완벽한 선도, 완벽한 악도 없습니다 — 이것이 스타인벡이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인간의 진실입니다.
📍 살리나스에서 마주한 두 개의 산
2003년, 필자는 스타인벡 연구를 위해 직접 살리나스를 방문했습니다. 소설에서 읽었던 그 계곡을 실제로 눈으로 보는 순간, 스타인벡의 묘사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동쪽 산은 밝고 따뜻했고, 서쪽 산은 실제로 어둡고 묵직했습니다. 선과 악의 상징이 지리 속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카인과 아벨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반복된다
『에덴의 동쪽』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적 특징은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의 서사가 세대를 넘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스타인벡은 단순히 성서 이야기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 패턴을 작품 전체의 골격으로 삼습니다. 이름의 첫 글자가 ‘C’와 ‘A’로 시작하는 이들의 운명적 대립은, 인간의 역사가 결국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와 그 거절에서 비롯된 분노의 반복임을 시사합니다.

1세대: Charles와 Adam
찰스(Charles)는 강하고 충동적이며 아버지의 사랑에 집착합니다. 아담(Adam)은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이 구도는 너무나 노골적으로 카인과 아벨을 연상시킵니다.
2세대: Cal과 Aron
그리고 이 구조는 다음 세대에서 더욱 정교하게 반복됩니다. 칼(Cal)은 어둡고 복합적이며 자기 안의 악을 두려워하는 인물입니다. 에이런(Aron)은 순수와 이상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스타인벡은 “모든 사람은 자신 안에 카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칼을 작품 속 ‘카인주의(Cain Principle)’의 구현자로 설정했습니다.
카인과 아벨 신화의 핵심은 ‘하나님이 왜 카인의 제물을 거절하셨는가’가 아니라, ‘거절당한 카인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있습니다. 스타인벡은 이를 현대적인 ‘아버지의 인정’ 문제로 치환합니다. 칼이 아버지 아담에게 정성껏 마련한 돈을 바쳤으나 거절당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정서적 정점입니다.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의 형제 경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새겨진 원형적 비극입니다.
왜 제목이 ‘에덴의 동쪽’인가?
제목 자체는 작품의 철학을 압축합니다.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 성경에서 카인이 아벨을 죽인 뒤 추방된 곳이 바로 이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지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 죄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스타인벡은 소설의 제목을 통해 독자에게 선언합니다.
“이 이야기는 낙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추방당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따라서 『에덴의 동쪽』의 모든 인물은 처음부터 불완전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 누구도 에덴 안에 있지 않습니다. 모두가 이미 결핍, 욕망, 죄,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스타인벡은 선인/악인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는 타락 이후의 인간을 그립니다.
캐시는 ‘악’ 그 자체인가 — 스타인벡이 만든 가장 위험한 인물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서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은 바로 캐시(Cathy), 즉 케이트(Kate)입니다. 팀머만(John Timmerman)은 케이트가 『에덴의 동쪽』의 주제적·구조적인 특징을 이루는 중심인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스타인벡의 도덕적 시각의 중심입니다. 즉, 그녀와 관련된 모든 행위들은 그녀에 대한 그의 대답과 그의 도덕적인 시각의 명확한 표현을 나타냅니다.”
그녀는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스타인벡은 그녀를 도덕적 공감 능력이 결여된 존재, 거의 악의 화신처럼 그립니다. 케이트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고, 결코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로서 동료들로부터 고립감을 느끼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스타인벡은 케이트를 통해 악의 존재를 보여주지만, 소설의 핵심을 “악의 승리”로 두지 않습니다. 케이트조차 아들 아론이 그녀에 대하여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상에 잠기며 그녀는 아들이 뉴욕에 있는 그녀를 방문할 것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자살하기 전에 “나는 모든 것을 내 아들 아론 트래스크에게 남겨줍니다”라는 쪽지를 씁니다. 가장 사악한 사람조차 소량의 선함을 가질 수 있다는 스타인벡의 관찰이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스타인벡이 창세기로 돌아간 진짜 이유 — Timshel
이 지점에서 스타인벡은 단순한 운명론을 거부합니다. 만약 인간이 단지 유전과 본성의 산물이라면, Charles와 Cal은 처음부터 죄인이며 구원은 불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 핵심에 히브리어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창세기 4장 7절에서 하나님이 카인에게 건네는 말—스타인벡은 이 구절을 소설의 핵심어 ‘팀쉘(timshel)’로 가져옵니다.

흠정역 성경은 이 구절을 “너는 그것을 다스릴 것이다”—즉 약속이나 예언으로 번역했고, 한국 가톨릭 성경은 “너는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즉 명령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 ‘팀쉘’의 정확한 번역은 “너는 그것을 다스릴 수도 있다”(Thou mayest rule over sin) —즉 가능성입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문법적 문제가 아닙니다. 약속이라면 인간은 구원받도록 예정된 존재가 되고, 명령이라면 선을 따르도록 강제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할 수도 있다’는 말은 전혀 다른 인간관을 선언합니다. 인간은 선과 악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타인벡이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소설의 뼈대로 삼은 진짜 이유입니다. 그는 카인의 비극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인에게 주어진 그 말—”너는 다스릴 수도 있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20세기의 언어로 다시 선언하기 위해 창세기로 돌아간 것입니다.
스타인벡과 프랭클 — ‘선택’이라는 인간의 마지막 자유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단순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스타인벡의 인간관은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철학과 만납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정신병의사인 프랭클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극악한 악의 한복판에서도 악을 견뎌낼 인간의 능력에 대한 낙관적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성인(saints)이나 짐승처럼 행동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중에서 어떤 것이 현실화될 것인지는 조건이 아니라 결정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스타인벡은 이 믿음을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극적으로 구현합니다. 발작으로 병석에 누운 아담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들 칼에게 한마디를 건네기 위해 용기를 냅니다. 그것이 바로 ‘팀쉘’입니다. 유전적 숙명론도, 케이트라는 악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의 저주도 아니라, 칼 자신의 결정이 그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확신이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패배의 장면이 아니라 승리의 장면입니다. 아담의 무기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용기 안에서, 리의 충성스러운 격려 속에서, 칼과 에이브라 사이의 사랑 안에서 죽음의 고통은 사라집니다.
이러한 믿음은 일부 비평가들에게 ‘낭만적’ 혹은 ‘감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프랭클처럼, 인간이 만나는 가장 극악한 악 앞에서도 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감성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스타인벡의 이러한 주제 의식은 『불만의 겨울』 분석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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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에덴의 동쪽』은 결국 우리 자신의 초상이다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위대한 이유는 특정 시대, 특정 가족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Charles와 Adam, Cal과 Aron의 갈등은 결국 모든 인간 안에 존재하는 갈등입니다. 우리 안에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고, 질투하는 형제가 있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카인이며, 동시에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아벨이기도 합니다. 『에덴의 동쪽』 해석은 결국 내 안의 괴물과 성자를 동시에 인정하는 작업에서 시작됩니다.
스타인벡은 묻습니다.
당신 안에는 카인과 아벨 중 누가 살고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둘 중 누구를 선택하며 살아갈 것인가?
살리나스 계곡은 에덴의 동쪽에 있습니다. 추방된 자들의 땅입니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말합니다 — 그 땅에서도 인간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난 존재일지라도, 그 ‘동쪽’의 땅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방대한 고전을 단순한 비극이 아닌 ‘희망의 서사’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서사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그 거대한 선언은 한 히브리어 단어에서 시작됩니다. Timshel. 그리고 그것이 『에덴의 동쪽』의 진짜 심장입니다.
💬 당신 안에는 카인과 아벨 중 누가 더 많이 살고 있나요? 인정받고 싶은 욕망, 질투, 선택의 순간… 『에덴의 동쪽』을 읽으며 떠오른 당신의 이야기를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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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에덴의 동쪽』은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나요?
인간의 선악 본성, 자유의지, 가족 관계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합니다. 특히 카인과 아벨 신화가 현대 가족 드라마 속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관심 있는 분께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Q2. 팀쉘(timshel)은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히브리어로 “너는 다스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에덴의 동쪽 카인과 아벨 신화에서 하나님이 카인에게 건넨 이 말은, 스타인벡이 소설 전체를 통해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인간은 본성의 죄수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Q3. 『에덴의 동쪽』은 몇 부작인가요?
본 블로그에서는 3부작 시리즈로 다룹니다. 1편(카인과 아벨 구조), 2편(캐시/케이트의 악의 본질), 3편(팀쉘과 자유의지) 순서로 연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