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인가? — 여산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드는 3가지 감각
한 달에 한 번, 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서울에 계신 노모와 형제들을 뵙고 다시 전주로 내려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매번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
어머니 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형제들과 짧은 안부를 나누고 차에 오른다. 강북구 수유동을 빠져나오면 동부간선도로가 시작된다. 도로에 올라타자마자 정체가 시작된다. 서울의 아침은 언제나 복잡하다. 도로의 정체, 옆 차선에서 슬그머니 끼어드는 차들, 중랑천 옆을 달리다 청담대교를 건너면 강남이다. 경부고속도로 진입로를 찾아 핸들을 꺾고, 판교 분기점을 지나며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빌딩 숲이 사라지고 차창 밖이 조금씩 넓어진다.
천안논산고속도로에 올라서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천안 분기점을 돌아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 이제 전주까지 100여 km, …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에, 전주에 도착하기 전 반드시 지나치는 곳이 있다.
여산 휴게소 표지판이 시야 끝에 걸리는 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내려간다. 핸들을 쥔 손의 힘이 빠지고, 숨이 한 박자 길어진다.
아, 다 왔다.

이상한 일이다. 집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몸이 먼저 대답해버린다. 내 고향은 서울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도, 모든 학업을 마친 곳도,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는 곳도 서울이다. 가족이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도 아니다. 그런데 왜, 전주가 가까워지는 이 순간에 — 집에 온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집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고속도로 위에서, 늦은 밤 책상 앞에서, 그리고 캐나다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던 아침에. 단순한 질문 같지만, 파고들수록 만만치 않은 질문이다.
집이란 무엇인가 — 나에게는 세 개의 집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는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세 군데 있다. 그런데 세 곳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집”이라서 문제다. 아니, 문제라기보다는 — 묘한 일이다.
첫 번째는 서울이다. 집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곳. 어머니가 계시고, 형제들이 있고, 내 유년, 청년이 통째로 묻혀 있는 곳.
무엇보다 — 가족이 캐나다로 이주하기 전까지, 우리가 함께 살던 곳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고, 소란스럽고 따뜻했던 그 집. 그것이 진짜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지금 서울에 가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뛰어놀던 골목이 없다.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살던 동네도, … — 재개발, 도시화라는 이름 아래 전부 달라졌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도로가 넓어지고, 내 기억 속 풍경은 어디에도 없다.
가족도 떠났고, 공간도 바뀌었다.
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떠나고 건물마저 사라지면, 그 집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어머니 집 현관을 들어설 때는 분명히 집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동네를 한 바퀴 걸으면 — 나는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 된다.
서울은 내가 자란 곳이고, 가족과 함께였던 곳이다. 그런데 이제 그 서울은 기억 속에만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 서울은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원래 집”이 되어버렸다. 반갑고 따뜻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어딘가 어색하다. 내 일상이 없고, 내 리듬이 없다. 어머니 집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문득 — 나는 여기 손님이구나, 싶은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올 때마다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두 번째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이다. 아내와 딸, 아들 그리고 푸들 모카가 사는 곳. 기러기 아빠로서 방학마다 찾아가는 곳. 논리적으로는 이곳이 집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 약간 손님 같은 느낌이 든다. 매번 냉장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새로 확인해야 하고, 마트 가는 길에서 “여기서 왼쪽이었나, 오른쪽이었나” 잠깐 멈추게 된다. 모카는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지만, 내 몸이 그 공간의 리듬을 아직 다 익히지 못했다.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런던은 아직 완전한 답이 되지 못한다.
세 번째가 전주다. 2005년, 교수로 임용되면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곳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짐을 풀던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텅 빈 캠퍼스, 낯선 전라도 억양, 어디서 저녁을 먹어야 할지조차 몰랐던 첫 번째 밤.
처음에는 전주가 “집”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 집이 될 수 없는 곳이었다. 2008년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주말부부였다. 월요일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에 내려와 조그만 원룸에 짐을 풀고, 3박 4일을 버티다가 목요일 오전 강의가 끝나면 다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전주는 그때 나에게 일종의 캠프였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 진짜 집은 서울에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주말이 있었다.
그런데 2008년, 가족이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으로 떠났다. 그 순간부터 방정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 집은 어머니 집이 되었고, 주말마다 올라갈 “우리 집”이 사라졌다. 전주 원룸만 남았다. 어쩔 수 없이, 전주와 제대로 마주해야 했다.
임용 초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던 발걸음이 끊긴 것이다. 전주에 내 단골 국밥집이 생기고, 즐겨 걷는 산책로가 생기고, 이름을 아는 참치 횟집 사장님이 생겼다. 캠퍼스 어느 계단이 삐걱거리는지 발이 먼저 기억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전주의 공기가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 여산 휴게소를 지나 전주 톨게이트로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몸 전체가 이완된다.
캠프가 집이 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 진짜 집이란 원래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택이 아니라 시간이, 의지가 아니라 습관이 만들어내는 것.

하이데거와 바슐라르가 집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집은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세계 안에 있음”(Being-in-the-world)의 방식이라고. 인간은 공간을 단순히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 거주한다는 뜻이다. 지붕과 벽이 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온 시간과 관계와 습관이 집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이런 말도 남겼다.
“Language is the house of Being.”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피식 웃음이 났다. 평생 언어를 연구한 영문학자가 집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으니 —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집을 연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스타인벡의 문장 속에서, 학생들과 나누는 텍스트 속에서, 전주의 혼자 사는 방 책상 위에서. 30년 가르치고 연구한 것이 결국 “언어라는 집”을 탐구한 것이었다면,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내 평생의 질문이기도 했던 셈이다.
[→ 스타인벡 살리나스 포스트]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공간의 시학』(The Poetics of Space)에서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 다른 각도로 답했다. 집은 “우리의 첫 번째 우주”(our first universe)라고. 여기서 첫 번째 우주란 태어난 집이 아니다. 몸과 기억이 가장 깊이 스민 공간, 눈을 감아도 구석구석이 떠오르는 공간, 꿈속에서도 자연스럽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다. 냄새, 소리, 온도, 빛의 각도 — 그 모든 감각이 쌓여 하나의 우주가 된다. [→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외부 링크]
그 기준으로 보면, 내 첫 번째 우주는 서울이 아니다. 전주다.
서울은 내가 자란 곳이고, 전주는 내가 된 곳이다. 교수로서, 학자로서, 혼자 사는 사람으로서 — 이 도시가 나를 빚었다. 2005년의 어색함이 2010년의 익숙함이 되고, 2020년의 편안함이 되었다. 단골 국밥집 주인이 내 취향을 알고, 캠퍼스 어느 계단이 삐걱거리는지 발이 먼저 기억한다.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바슐라르의 답은 결국 이것이다. 몸이 기억하는 시간의 두께. 그리고 그 두께가 시작되는 경계선이 바로 여산 휴게소다. 그 표지판을 지나는 순간, 철학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여기서부터 내 세계다.
가족이 없는 곳이 집인 이유 — 그리고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답
물론 아이러니하다는 걸 안다.
집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고 모카가 있는 런던이 답이어야 논리적으로 맞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집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은 논리보다 먼저 반응한다. 20년의 시간이 쌓인 전주 앞에서, 가족이 떠난 지 18년이 지났지만, 캐나다는 아직도 몸에 완전히 스미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고 캐나다에서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다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주로 내려올 때 — 이 감각을 기러기 아빠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안도감.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머리로 정리하기 전에, 몸이 먼저 내뱉는 그 감각.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함”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기러기 아빠로 이십 년 가까이 살면서, 나는 배웠다.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집은 태어난 곳일 수도 있고, 가족이 있는 곳일 수도 있고, 내 시간이 가장 두텁게 쌓인 곳일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이 세 가지가 서로 다른 장소를 가리킨다. 그럴 때 우리는 평생 두 개, 혹은 세 개의 집 사이 어딘가를 떠돈다. 그것이 슬픈 일인지, 풍요로운 일인지는 —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답이 여산 휴게소 표지판 앞에서 매달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 “인생 2막 — 62세 교수가 디지털에 미친 진짜 이유” 내부 링크]

늦은 밤, 전주의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스탠드 불빛이 벽에 길쭉한 그림자를 만든다. 시차가 -13시간인 런던은 지금 아침이다. 모카는 아침마다 뒷마당에 나가야 할 시간을 안다. 짖지도 보채지도 않고 — 그저 백야드 문 앞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모카의 방식이다. 그걸 보며 아내는 커피를 끓이고 있을 것이고, 딸아이는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전주의 밤 속에 혼자 앉아 있다.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다.
책상 위에는 스타인벡의 책이 펼쳐져 있고, 모니터에는 이 글이 절반쯤 완성되어 있다. 30년 가르치고 연구한 언어들이 이 방 안에 가득하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말대로라면,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쓰는 한 집 안에 있다.
집이란 무엇인가. 나는 아직도 완전한 답을 모른다. 서울인지, 런던인지, 전주인지 — 아마 평생 모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여산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어깨가 내려가는 그 순간, 몸이 먼저 대답한다는 것을.
논리가 대답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아보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