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 부인이 악녀로 불린 3가지 이유 – 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

“그 여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1937)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이 장면에서 멈추게 됩니다.

존 스타인벡의『생쥐와 인간』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은 바로 컬리 부인(Curley’s wife)입니다. 먼지 날리는 1930년대 캘리포니아의 어느 농장. 조지(George)는 레니(Lennie)에게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I never seen no piece of jail bait worse than her. You leave her be.”
“그년은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사내를 홀리는 쥐덫 같은 년이야. 얼씬도 하지 마.”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에서 컬리 부인은 이렇게 소개됩니다. ‘독약(Poison)’, ‘쥐덫(Rat-trap)’, ‘요녀(Tart)’.

소설 속 남자들은 한결같이 그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녀가 모든 비극의 원흉인 악녀였을까요?

대학에서 스타인벡을 강의하며 수많은 학생들과 이 질문을 나눴습니다. 처음엔 다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소설의 행간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강의실은 숙연해지곤 합니다.

오늘은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한 인간의 지독한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 193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농장 배경

먼저 알아야 할 것 — 1930년대 미국이라는 세계

컬리 부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1930년대 미국은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한복판이었습니다. 주식 시장이 무너지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농장으로 몰려든 떠돌이 일꾼들은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이 시대 여성의 삶은 어땠을까요? 더 가혹했습니다. 경제 대공황으로 사회가 흔들릴수록, 여성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더 보수적으로 굳어졌습니다. 여성은 집 안에 있어야 했고, 남편에게 순종해야 했으며, 꿈이나 욕망을 드러내면 안 됐습니다.

그 시대의 잣대로 그녀를 바라봤을 때만 ‘요부’가 됩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다시 보면 — 그냥 말동무가 필요했던 한 여자입니다.

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 컬리 부인 1930년대 농장 헛간

붉은 입술과 타조 털 슬리퍼 — 오해의 시작

“She had full, rouged lips and wide-spaced eyes, heavily made up. Her fingernails were red. Her hair hung in little rolled clusters, like sausages. She wore a cotton house dress and red mules, on the insteps of which were little bouquets of red ostrich feathers.”
입술을 짙게 칠하고 커다란 눈 주위에도 진한 화장을 한 여자였다. 여자는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고, 머리는 소시지처럼 둥글게 말아 여러 가닥으로 늘어뜨렸으며, 붉은 타조 털로 만든 조그마한 장식이 붙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독자도 순간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이 여자가 사건을 일으키겠구나.’ 캔디(Candy)는 비아냥거렸고, 조지는 레니에게 피하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는 화장이 진한 여성을 보면 자동으로 ‘위험하다’고 느낄까요?

이건 텍스트보다 우리 안에 새겨진 편견이 먼저 반응한 것입니다. 스타인벡은 바로 이 지점을 교묘하게 건드립니다. 그녀의 붉은 화장은 유혹의 도구가 아니라, ‘나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는 생존의 신호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름조차 허락되지 않은 삶

소설을 읽다 보면 농장의 모든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조지, 레니, 슬림, 캔디, 크룩스… 그런데 유일하게 이 여성만 이름이 없습니다. 소설 내내 그저 ‘컬리 부인'(Curley’s wife)으로만 불립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설정이 아닙니다. 정체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 역시 캐나다에서 18년 넘게 캐나다와 한국을 오고가며 생활하면서 때로는 이방인으로서, 때로는 누군가의 배경으로서 존재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수천 마일 떨어진 낯선 땅에서 느끼는 그 막막한 소외감은 1930년대 농장의 그녀가 느꼈을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생쥐와 인간 컬리 부인 외로움 헛간 장면

“나도 꿈이 있었어요” — 헛간에서 터져 나온 진심

“I lived right in Salinas. Come there when I was a kid. Well, a show come through, an’ I met one of the actors. He says I could go with that show. But my ol’ lady wouldn’t let me… If I’d went, I wouldn’t be livin’ like this, you bet. … Says I was a natural. Soon’s he got back to Hollywood he was gonna write to me about it.”
“나는 바로 여기 살리나스에서 살았어요. 어릴 때 이곳으로 왔죠. 그런데 순회공연단이 마을에 왔을 때, 배우 한 명을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이 나더러 그 공연단과 함께 가도 좋다고 했죠. 하지만 우리 엄마가 허락하지 않았어요… 만약 그때 내가 갔더라면, 분명히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 그 사람은 내가 타고난 배우라고 했어요. 할리우드로 돌아가는 대로 내게 편지를 써주겠다고 했었죠.”

그녀는 할리우드를 꿈꿨던 소녀였습니다. 어머니의 반대로 꿈이 꺾였고, 댄스 팰리스에서 만난 컬리와 그날 밤 결혼해버렸습니다. 결혼한 지 단 두 주 만에 그녀가 발견한 것은 — 철저한 유폐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 고립된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존재감을 드러내려 할 것 같나요?

왜 하필 레니였을까 — 헛간 장면의 진짜 의미

컬리 부인이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상대는 레니였습니다. 지적 장애가 있어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는 레니에게요. 왜였을까요?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레니는 그녀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 거기 있어줬습니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불륜도 유혹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판단하지 않고 옆에 있어줄 누군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스타인벡은 이 장면을 통해 묻습니다. 이 비극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컬리 부인인가, 레니인가, 아니면 그녀를 그 농장에 가두었던 시대와 사회인가?

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 작가

농장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I ain’t got no people to talk to. I get awful lonely. … You can talk to people, but I can’t talk to nobody but Curley. Else he gets mad. How’d you like not to talk to nobody?”
“나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난 너무 지독하게 외로워요. … 당신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난 컬리 말고는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요. 안 그러면 그이가 화를 내거든요. 그 누구와도 말을 못 하고 사는 게 어떤 건지 당신이 알기나 해요?”

캐나다와 한국을 오고가며 생활하면서 저도 비슷한 순간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수십 명의 이웃이 있어도, 주일에 한인 성당에 가서도 —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그 느낌. 표면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깊이는 고립된 상태. 그 순간 그녀가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변의 컬리 부인 —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

컬리 부인의 이야기가 90년 전 소설 속 이야기로만 느껴지시나요?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비슷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옷을 입고 다니는 동료, SNS에서 매일 화려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 그들 모두 행복해서 그런 것일까요? 어쩌면 컬리 부인처럼,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문학이 오래된 이야기를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스타인벡이 1937년에 그린 컬리 부인의 외로움은, 2026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 살아있습니다.

스타인벡이 직접 한 말

1937년 브로드웨이 연극 당시, 컬리 부인 역의 배우 클레어 루스(Claire Luce)가 작가 스타인벡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스타인벡의 답장은 명쾌했습니다.

“She is a nice, kind girl and not a tramp.”
“그녀는 착하고 친절한 여자이지, 매춘부가 아니다.”

작가 자신이 직접 한 말입니다. 스타인벡은 컬리 부인을 악녀로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희생자를 그리려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이었을까?

악녀의 조건 vs 희생자의 조건

우리가 그녀를 악녀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해쳐야 합니다. 그런데 소설 어디에도 그런 장면은 없습니다. 반면 그녀에게는 희생자의 조건이 세 가지나 겹쳐 있습니다. 이름이 없는 여성, 꿈을 포기한 삶, 대화할 사람이 없는 환경. 이 세 가지가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이 될까요? 그게 바로 컬리 부인입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

그녀는 악인이 아닙니다. 잘못된 시대, 잘못된 장소에 태어난 여자였습니다. 실제로는 가장 외롭고, 가장 꿈이 많고,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스타인벡은 남성 중심의 거친 사회(Patriarchy)에서 소통할 길을 잃고 비극으로 치닫는 ‘시대의 희생자’로 그렸습니다.

그녀가 레니의 머리카락을 만지게 허락했던 것도, 유혹하려 함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와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싶었던 인간 본연의 욕구였을 뿐입니다. 그 순수한 갈망이 지적 장애를 가진 레니의 통제되지 않는 힘과 만나며 비극이 완성된 것이죠.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지’가 아니었을까?

글을 마치며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누군가를 ‘컬리 부인’처럼 편견의 틀에 가둬본 적은 없나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옷차림이나 거친 말투만 보고, 그 뒤에 숨겨진 ‘말하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외면하지는 않았나요?

문학은 우리에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스타인벡이 그녀에게 이름을 주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소외된 타자’를 상징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오해받았던 순간’ 혹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가 미안해졌던 경험’이 있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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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다음 편 예고

소설 속 농장의 모든 남자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심지어 늙은 개조차 ‘캔디의 개’라고 불리며 존재를 인정받죠. 하지만 유독 주인공급인 이 여성에게만은 이름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누구의 부인’으로만 불릴 뿐입니다.

스타인벡은 왜 그녀의 이름을 빼앗아버린 걸까요? 여기에는 소름 돋는 문학적 장치가 숨겨져 있습니다.

→ 다음글:
[2편: 『생쥐와 인간』의 유일한 여성 — 왜 그녀에게는 이름이 없을까?]
[3편: 캔디의 늙은 개 — 쓸모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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